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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형 Jun 05. 2021

선사(禪師)의 위험, 시인의 위험

<나의 기억현상소> 제5화

 중국 당나라 때의 백거이(772~846)는 시인으로 지금까지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시랑(侍郞)이란 벼슬을 비롯해 거의 평생을 관리로 지냈다항저우[杭州]에서 지방관으로 있을 때 그는 부러 도림(道林)이라는 한 산승(山僧)을 찾아갔다키 큰 소나무 가지에 앉아 좌선하기를 즐겨해 별명이 '조과 화상'(조과(鳥窠)는 새의 둥지라는 뜻)이기도 했던 그를 올려다보며 백거이는 이렇게 말을 붙였다.  


지금 선사께서 앉아 계신 곳은 위험합니다.”

도림 선사가 즉각 응대했다

노승이 보기엔 시랑(侍郞)의 위험이 더 커 보입니다.” 

나는 강산을 다스리는 자리에 있는 사람인데 무슨 위험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위험하다는 것이오, 라는 식으로 잘라 말하지 않고 선사는 친절히 반문했다

횃불이 서로 부딪치고 식견과 성격이 안정되어 있지 못한데위험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지방관이자 시인인 백거이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그는 금방 마음을 돌려서 되물었다.   

무엇이 불법(佛法)의 참된 뜻입니까?” 

그가 본래 던지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악을 짓지 말고 선을 행하십시오.”

대단한 학자이기도 한 백거이로선 좀 어이가 없었을 테지만 그는 말을 이어갔다. 

세 살 먹은 어린애도 그런 말은 할 줄 압니다.” 

도림 선사가 말했다.        

세 살 먹은 어린애도 말할 수는 있지만 팔십 먹은 노인도 행하기는 지극히 어렵습니다.”


이에 백거이는 절을 하고 순순히 물러났다고 전기는 전한다왜 그랬을까? 알 수는 없다. 착하게 살아라말보다는 실천을 하라는 뻔한 도덕적 훈계나 들으려고 그가 산중까지 굳이 행차한 것은 아니었다. 선사의 말에서 시인은 원하는 답을 하나 찾았던 걸까? 아니면 의문만 품고 돌아갔던 걸까? 

  

악을 짓지 말고 선을 행하십시오.”

불법의 참된 뜻을 묻는 백거이에게 도림 선사는 이렇게 말했지만 오래전 인도의 붓다께서는 그런 말 대신 대중에게 꽃을 한 송이 들어 보였다는, '염화시중'의 설화를 우리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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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음절 하나하나마다 생생하게 피어났다 사라지는 저 이름 없는 꽃들은 어디에서 피어났다 사라지는가……? (말의 의미를 따라가지 않는다면 말이 솟아나는 본래 자리를 간파할 수 있다는 미묘한 가르침의 말이 있다.)

         

베트남 출신의 선사 틱낫한이 프랑스에 세운 아쉬람에서는 수행자들이 포행(布行)을 하는 중에 한 번씩 종을 친다고 한다그러면 그들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생각도 일순 끊어지는 것이다. (순간의 꽃들은 침묵 속에서만 피어난다는 참으로 아름다운 가르침의 말도 있다.)   

   

예쁜 소녀가 작은 배 저어 가서 [小娃撑小艇]

흰 연꽃을 훔쳐 따서 돌아오네 [偸采白蓮回]     

그 흔적 감출 줄을 몰라 [不解藏踪迹]

부평초 위로 길이 하나 열렸네 [浮萍一道開]     


백거이의 ‘연못가에서 [池上]’ 연작시 중 하나다


연못가에 멈추어 선 시인이 연못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나? 예쁜 소녀와 작은 배와 흰 연꽃과 부평초와 부평초 사이로 난 물길 하나 ……뿐이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위험한 소나무 가지 위의 선사는 또 말했을지도 모른다. 


연못가에 서 있는 시인이여, 오늘 당신은 위험해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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