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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형 Mar 05. 2022

태초에 아기가 있었다

나의, 로마로 가는 길 : 제7화

어머니, 보고 계셨지요? 당신의 손녀 주희가 드디어 아기를 낳았습니다. 아니 녀석이 때맞추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라 할까요. 그제 새벽 1시경 병원의 안드레아로부터 첫 연락이 왔을 때 (코로나 때문에 한 사람의 보호자만 산모 옆에 있을 수 있었답니다.) 저와 제 처, 둘째 소희 이렇게 셋은 집에서 잠도 안 자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날 저녁 산모에게 간헐적인 산통이 와서 안드레아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는 소식도 실시간으로 들은 바였기에 녀석의 탄생은 아침이면 뜨게 되어 있는 해만큼이나 당연한 귀결이었음에도 우리는 가슴들을 졸이고 있었던 거지요.      


“아빠, 다프네가 나왔데요!”     


제 엄마와 딴 방에서 안드레아와 문자를 나누던 둘째 소희가 제 방문을 열고는 이렇게 소리쳤을 때의 제 심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는지요. 그래? 그렇구나! 대답은 하면서도 좀 모호하고 야릇하고 허전하고 어벙했다고나 할까요. 물론 저는 거실로 나가 아내, 소희와 함께 야, 무사히 잘 나와서 다행이야, 꿈만 같다 하며 환호하고 기뻐했지요. 누군가 조금만 건들면 눈물이 솟구칠 것도 같았고요. 그런데 저는 아무래도 좀 이상했습니다. 제 마음이 그 기쁨의 공간에 오롯이 깃들지 못하고 어디론가 겉돌고 있는 것만 같았거든요. 거기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날 우리 셋은 새벽이 올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을 청하러 저는 제 방으로 둘은 다른 방으로 돌아갔더랬습니다. 그런데 혼자 침대에 걸쳐 앉는 제 앞으로, 아니 제 마음속으로 스윽 나타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였을까요? 그것은 바로 어머니, 작년 가을 우리 곁을 영영 떠나신 어머니였습니다. 조금 전 제 마음 한구석이 왠지 허전하고 겉돌고 있는 것 같았던 까닭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지요.          

어머니. 어릴 적은 물론이고 나이가 들어 결혼도 하고 자식을 둘이나 낳은 후에도 조금만 좋은 일이나 자랑할 만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가 그걸 고(告)했던 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어머니였습니다. 그런데 소희에게서 ‘아빠, 다프네가 나왔어요’ 하는 말을 듣는 순간 문득 떠올려 보니 로마에도, 한국에도 어머니는 안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아, 어머니의 부재를 주희의 첫아기이자 어머니의 세 번째 증손녀의 탄생 소식에 가슴이 텅 비도록 황망하게 확인하게 될 줄은 정녕 몰랐습니다.   

   

제가 정녕 몰랐던 것은 또 하나 있습니다. ‘나이 열여덟에 결혼한 어머니는 어떻게 첫 아이를 낳았을까……?’ 이런 생각, 이런 질문을 제 딸의 아기를 보기 위해 날아온 로마에서 하게 줄도 저는 상상도 못 했다는 말입니다. 작년 가을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 드린 후 형님이 써 내려간 어머니 ‘평전’을 여기서 다시 꺼내 보게 된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6.25 전쟁의 와중에서 몇 개월에 걸친 유랑과 번민 끝에 아버지는 다시 어머니에게도 돌아왔다. (……) 전선은 38선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일진일퇴를 계속하는 장기전이 되고 있었고 휴전협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구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있어 첫 아이를 임신 중이었던 어머니가 그해 음력 1월경 사산을 하였다. 태아 5, 6백 명 중 한 명꼴로 나온다는 전치태반이었다. 임신 8개월째의 팔삭둥이였고 정상적으로 태어났으면 아들이었다. 허리가 아파 누워있는데 하혈이 시작되어 처음에는 산파가 왔다가 인근의 박애 산부인과로 실려 갔다. 요의 솜이 다 젖을 정도로 피를 흘려서 외할머니가 금호강으로 가서 강물이 벌게질 정도로 빨았다. 시어머니는 얼마 전 돌아가시고 난 후이고도 해서 외할머니가 딸의 해산을 도왔다. (……) 이후 일 년이 채 안 되어 1951년 어머니는 두 번째 아이인 첫 딸을 무사히 출산하였다. 1953년 휴전이 되고 전쟁이 끝난 후 1년 후인 1954년 추석 무렵에 장남으로 태어나 그렇게 알고만 자란 나는, 중학생 때가 되어서야 이렇게 세상 빛을 보지도 못하고 죽은 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무언가 크게 허전한 느낌이었다.’     

그래요. 어머니는 참 간고한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모두 여섯 남매를 낳으셨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옛말은 그 ‘풍파’의 실상을 만분지일도 담아내지 못하지요. 그땐 다들 그랬다 하겠지만 생각하면 실로 아뜩하기만 합니다. 하나둘 낳아서 그야말로 금지옥엽, 제가 보기엔 아주 넘쳐흐를 정도로 해 주지 않으면 성이 안 차는 것 같은 요즘 세대와 비교하면 더욱 그러하지요. 주희야 설령 그러고 싶었다 하더라도 할 수가 없는 형편이지만 어쩌면 그게 다행인지도 모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의 선한 마음이나 덕성에 해악을 끼치기로는 결핍보다는 과잉이 훨씬 더하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가 아니던가요? 주희가 알뜰살뜰 챙긴 출산 준비물 중 옷가지(에 더해 모자, 신발까지)의 대부분은 친구, 친지, 양가 부모, 또 그 부모의 친구들이 보내온 선물이었는데 거기엔 주희의 먼저 결혼한 친구가 자기 아기에게 잠깐 입혔거나 아예 입힐 기회가 없었던 옷도 있었고 사돈네 이웃집 아주머니(할머니?)가 손수 한 땀 한 땀 짜서 보낸 다프네 옷도 있었답니다. 

     

저는 막, 주희가 아기를 낳는 걸 보고는 어머니를 떠올렸다고 말씀드렸는데 생각해보니 32년 전 주희 엄마가 주희를 낳을 때는 어머니가 저 낳을 때를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비교 비슷한 것을 했던 기억은 전혀 없군요. 제 처도 직장 다니랴 애 키우랴 결혼하자마자 교직에서 해직된 남편을 대신해 경제를 책임지랴 어머니와 비교할 수는 없어도 적지 않게 고생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참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다프네가 어떻게 생겼느냐구요? 그야, 개똥이처럼 반짝반짝 이쁘지요, 하하하. 집사람은 스물일곱 살이나 된 둘째 딸 소희를 지금도 한 번씩 ‘똥깡(아지)’라고 부르고 저는 그 이름을 약간 음악적으로 변용시켜 ‘똥땡’이라고도 부릅니다만 생긴 모양이야 어떻든 그저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바라는 우리 조상의 마음이 담긴 그런 이름들이 저는 좋답니다. 어머니도 주희, 소희 어릴 때 “아이고, 우리 똥강아지” 하시곤 했잖습니까. 물론 ‘우리 공주님’이라고도 하셨고요. 그래도 저는 ‘공주’보다는 ‘똥강아지’, ‘똥깡’, ‘똥땡’이 좋군요. 아참, 어머니 다프네의 한국 이름을 '지안'이라고 지었다는 얘기는 한 번 한 적은 있었지요? 이탈리아어와 한국어를 같이 배워야 하는 다프네, 이름 복도 많다 싶습니다. 


그래도 다프네의 얼굴 생김새에 대해 한마디는 듣고 싶으시지요? 이제 겨우 사흘 째긴 하지만 주희가 병원에서 찍어 보낸 사진이랑 영상을 보면 녀석은 부산의 딸 제 엄마와 로마의 아들 제 아빠 안드레아를 딱 반반씩 닮은 것 같습니다. 눈은 큰 편이고 입술은 도톰하고 이마는 훤하고 또……하하, 이러다 보면 다프네란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빼어난 미녀의 이름과 같다는 사실까지 끌고 와 대책 없는 손녀 자랑으로 돌입할 수도 있으니까 이쯤서 그만하는 게 좋겠습니다. 

     

기쁠 때 아낌없이 기뻐하는 게 무슨 허물이겠습니까. 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늘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법, 우리에겐 그것을 잊지 않는 지성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현자는 네가 기뻐하며 웃을 때 고통에 떨며 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도 말씀했지요.  

    

어머니. 주희가 산통을 느끼고 병원으로 갔다는 기쁜 소식을 들은 그날 밤, 그러니까 다프네가 태어나기 바로 전날 밤 저는 로마에 올 때 챙겨 온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다시 펼쳐 들었는데요, 유독 눈에 띈 한 대목이 이랬습니다.       


에픽테토스는 “어떤 사람이 제 자식에게 입 맞출 때 ‘내일 이 아이가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야’라고 마음속으로 속삭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건 재수 없는 말이 아니냐고? “천만에!” 하고 에픽테토스는 대답했다. “자연의 과정을 뜻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도 재수 없는 말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곡식이 베어진다는 표현도 재수 없는 말일 것이다.”  

   

경사스러운 날에 꼭 일어날 일도 아닌 불행을 점치는 사람처럼 ‘재수 없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제 가슴을 더 서늘하게 파고든 말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황제가 인용한,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속에 나온다는 한 마디 대사였습니다.    

  

“나와 내 아들들이 신들에게 버림을 받았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어머니는 어떠셨는지요? 첫아기가 숨이 끊어진 채 세상 밖으로 나왔던 날 당신은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꽃다운 새색시였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흘러 이번엔 당신의 셋째 아들이 먼저 세상을 저버리고 만 날이 또한 당신께는 있었습니다……당신과 당신의 아들들이 신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할 그런 날 말입니다. 

    

딸아이의 결혼과 출산이라는 겹경사를 맞아 오게 된 로마, 이 멋진 이국의 도시에서 한다는 소리가 좀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결혼식도 출산도 아무런 탈 없이 잘 지나간 것은 신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증좌라면 증좌, 신의 축복과도 같은 것이었는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신은 늘 주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걸 우리는 압니다. 때가 되면 송두리째 빼앗음으로써, 우리의 자만과 탐욕과 몽매함에 벼락을 내림으로써 우리를 어떤 진실의 자리로 돌려놓고 또 깨어나게 하는 것이니까요.         

어머니. 아기를 낳는다는 것,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도 이번 로마에 와서 새삼스럽게 해 본 생각이고 물음입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해 봅니다. 그것은 때론 아수라 지옥처럼 느껴지는 이 사바 세상에도 희망의 꽃은 피어난다는 것, 아무리 팍팍하더라도 우리네 생은 살아 볼 만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눈물겨운, 나날의 기적이라고요.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러했듯 주희도 안드레아도 다프네를 키우는 동안 기쁨이 큰 만큼 몸과 마음의 고생도 만만치는 않을 것입니다. 또한 다프네가 살아갈 낮과 밤, 춘하추동, 일 년 열두 달, 그 삶의 장강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오직 신만이 아실 테고요. 우리네 인간은 나날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을 때론 묵묵히 때론 기뻐하며 온전히 받아 안고 한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갈 뿐입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다프네에게 녀석의 아버지 쪽 훌륭한 조상인 황제 철학자의 가르침에 대해 제가 이야기해 줄 날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늘 소박하고, 선하고, 순수하고, 진지하고, 가식없고, 정의를 사랑하고, 신을 두려워하고, 자비롭고, 상냥하고 맡은 바 의무에 대하여 용감한 사람이 되도록 하라. 


저부터 다짐하고 노력해야겠지요. 그런 뜻에서 어머니, 어젯밤엔 다프네를 생각하며 서툰 솜씨나마 시를 한 편 써 보았습니다. 어머니께도 들리도록 ‘하늘’을 우러러 읽어드리는 것으로 이 편지를 마칠까 합니다. (지금쯤 ‘땅’의 다프네는 소록소록, 세상모르게 잠을 자고 있을 것 같지만요.)  

    

다프네야, 다프네야


나는 너를 똥강아지라고 불러본다

네 엄마가 아기였을 때 

네 엄마의 할머니도 네 엄마의 엄마도 불렀던

아이구 우리 똥강아지

다정도 했던 그 이름

범도 뭐도 안 무서운 하룻강아지, 똥강아지     

네가 반짝 눈을 뜨면 별 둘이 반짝 

네가 응앙, 울면은   

엄마도 할머니도 깜짝, 

별처럼 놀라고 별처럼 웃음 짓고 

온 우주가 너를 품에 안는구나 

     

너도 힘껏 자라 엄마가 된다면 알게 될 거야 

하룻강아지가 누는 똥은 똥이 아니란 거

어느 하늘에선가 떨어진 

조그맣고 말랑말랑한 별똥별이란 거

5월 들판의 애기똥풀꽃이란 거     

너, 영락없는 나의 똥강아지야  

   

네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배웠다

태초에 혼돈이 있었고

태초에 하나님이 있었고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또한,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고    

  

허나, 태초란 시작이자 끝이며 끝이자 시작인 것 

아득한 신비이면서 어제도 내일도 아닌

지금 바로 눈앞의 진실      

이제 나는 여태 배웠던 모든 말들을 지워버리고

로마의 하늘 아래

다프네의 요람 곁에서 

쓴다     


태초에 아기가 있었다—고     

태초의 혼돈 같은, 하나님 같은, 말씀과도 같은  

다프네라 불러도 똥강아지라 불러도 별처럼 빛날 뿐인 

태초에 아기가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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