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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형 Mar 14. 2022

단테를 호명하다

나의, 로마로 가는 길 : 제8화

로마 체류 3개월을 위해 챙긴 여행 가방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책 두 권 중 하나는 단테의 <신곡> 번역본  지옥편이었다. 연옥편과 천국편은 별 고민 없이 포기했다. 큰딸의 해산바라지를 위한 물품, 그중에서도 김치와 미역을 비롯한 한국 음식을 최대한 많이 가져가자는 아내의 타당한 주장도 주장이었지만 로마 생활을 견디는 데는 지옥편이 더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천국의 일이야 천국의 사람들에게 맡겨두면 될 일, 저잣거리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늘 ‘지옥도’가 아닌가 말이다.


과연 그랬다. 그저께, 20대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이었다. 고국의 방송사가 개표 방송을 새벽까지 이어가다가 마침내 그 결과를 공표하기에  이르렀을 때 (그때 로마는 밤 9시경이었다) 내 마음은 지옥불에라도 댄 것 같았다면 과장일 따름일까. 내 몸의 첫 반응은 참을 수 없는 구토감이었다. 보름여 전 아내와 버스를 갈아타 가며 찾아간 로마의 한국 대사관에서 반듯하게 투표를 하고 대사관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찍고 또 버스 정류장 곁의 호텔 카페에서 커피에 크르와쌍을 들 때만 하더라도, 아니 불과 몇 시간 전 집에서 고국의 새로운 미래를 위하는 마음으로 포도주 잔을 부딪칠 때만 하더라도 나는 어쩌면 천국에 있었던 것인데……!


나는 옷을 걸쳐 입고 로마의 밤거리로 나섰었었다. 불 밝히며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며 시커멓게 서 있는 플라타너스 가로수며 바삐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며 모든 게 비현실이고 의미 없이 겉도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내 입에서 절로 흘러나온 노래……! 


Why does the sun go on shining

Why does the sea rush to shore

………

I can’t understand, I can’t understand

………


‘세상의 종말’ (End of the world)…….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노트북을 열어 그 아픈 실연의 노래를 계속해 틀어놓았다. 아, 세상은 끝장이 나버렸는데 어째서 해는 비치고 파도는 해변으로 밀려들고 새는 노래하고 하늘의 별들은 저토록 반짝일 수 있단 말인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람들은 어째서 모르는 걸까요’


마지막 가사를 곱씹으면서는 예수의 말까지 떠올랐다. 십자가에 매달려 단말마의 고통을 겪고 있는 중에도 못 박혀 피 흘리는 자신의 발 밑에서 희희덕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지 않았던가.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를 모르나이다.’


견강부회에 아전인수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내겐  저 대통령 선거가 거짓과 진실, 악함과 선함, 탐욕과 상생, 전쟁과 평화, 건강한 이성과 무지몽매와의 국민적 대결전으로 여겨졌던 것을! 그래도 상처 입은 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한 나는 홀로 내 방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찾았다. 그러자  ‘사라져 가는 자들의 천태만상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라’는 충언도 한 그는 철인 황제답게 말하는 것이었다.


‘자연이 지금 너에게 요구하는 것을 행하라. 할 수 있는 한 활동하고 누가 보아줄까 주위를 돌아보지 마라.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바라지 말고 조금이라도 진척이 있으면 만족하고 그 결과를 하찮게 여기지 말라. 누가 사람들의 신념을 바꿀 수 있겠는가.’


오, 고결한 인간이여. 과연 그러합니다. 당신이 제위를 물려준 아들 콤모두스가 그야말로 개망나니, ‘로마인에게 내려진 가장 지독한 저주’라 불려질 정도의 폭군이 될 줄을, 그가 빛나는 로마 제국에 거대한 지옥도를 그리게 될 줄을 당신인들 알았겠습니까. 설사 예견했다 해도 뭐가 달라졌을까요? 당신의 반석 같은 신념대로  ‘만사는 일어날만하기에 일어날 뿐’인 것을. 일찍이 붓다께서도 궁극의 진리로서 연기법을 설하셨습니다. 이것이 일어나니 저것도 함께 일어나니 원인과 결과는 동시에 작동하는 하나임을 알라고 말이지요. 나는 붓다에게 또한 당신에게 합장하고 절 합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스토아적 평정도 불가적 무상심도 너무나 멀리 있는 곳에 내동댕이 쳐져 있는 것입니다.


어찌할 수가 없었다. 좀 잊고 있다가 선거 결과가 떠오르기만 하면 상처 입은 내 마음은 피를 흘렸다. 막대 놓고  대국민 거짓말을 일삼고도 멀쩡했던 자들이 승리에 희희낙락하는 꼴을 상상할 때도 그랬지만 그보다는 내 주위만도 숱한 선량한 사람들이 겪었을 실망 절망 눈물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만 같았다.


내가 ‘End of the world’를 떠올리고 있던 그 시각 고국의 내 많은 벗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고 다음날 SNS를 통해 고백도 했었다. 하지만 말 않았더라도 그걸 어찌 내가 모를까. 모두가 민주주의와 정의,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분단조국의 화합과 평화 공존을 염원해온 깨어있는 ‘착한 바보’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들의 햇살 한 줌 같은 소망을 손가락으로 비웃으며 지옥도를 내 손으로 그리려 안달이라도 난 것 같은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가……?


단테여 단테여. 


마침내 나는 단테를 호명했다……나도 당신을 따라 지옥을 둘러보고 싶다오. 어떤 자들이 그곳에서 아비규환, 생전의 죄과를 희망도 없이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지를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은 것이오……. 그러자  단테는 자신의 호소에 응답한 베르길리우스처럼 내게 응답하는 것이었다…… 가련한 꼬레아노여, 고향 피렌체에서 추방되어 객지에서 20년을 떠도는 동안 나의 분노, 고독, 공포, 절치부심 그리고 나의 사랑으로서 영원한 별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을 위해 내가 피로써 또 영혼으로써 ‘꼬메디아(La Commedia)’를  썼다는 건 그대도 잘 아는 일, 내가 달리 할 말이 뭐가 있으리오……. 


내 마음의 단테여. 그건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일주일 전이었던가. 이탈리아어는 왕초보임에도 나는 그대의 <La Divina Commedia>(신곡)를 사고야 말았다오. 당신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고 싶은 욕망에서였습니다. 로마 시내를 돌아다니다 서점이 눈에 띌 때면 살까 말까, 비싸지는 않을까 소심하게 망설이긴 했지요. 그런데  ‘천사의 성’ 바로 앞 테베레 강변의 헌책 파는 난전 책더미 속에 당신이, 아니  당신의 <La Divina Commedia>가 숨어있을 줄이야. 브라보! 눈썰미가 보통 아닌 아내가 찾아낸 그것은  헌 게 아닌, 비닐로 봉해진 정가 28 유로의 새책이었는데도 클라식한  품격의 고서점(!) 답게 단돈 5유로였으니 이것은 그대가 나를 위해 숨겨둔 선물은 아녔을는지……?


Nel mezzo del cammin di nostra vita

Mi ritrovai per una selva oscura

Che la diritta via era smarrita


우리네 인생길 반고비에

나는 어둔 숲 속에 서 있었네

올바른 길을 잃어버린 채


번역본으로야 스무 번은 대했을 <신곡> 전편의 첫 곡이자 지옥편의 첫 곡 1~3행. 그런데 나의 ‘꼬메디아’ 순례는 번번이 여기에서 멈추곤 했다. 무릇 고전은 손가락으로라도 파기만 하면 영혼의 금맥과 만날 수 있는 무섭도록 아름다운 거대 광산과도 같은 것.  나는 첫 술에 배가 부른 사람처럼 책을 던지고는 서성거리게 되었던 것이다. 더 읽어나가면 첫 보석에 색이 바래거나 그걸 잃어버리게 되기라도 하듯이.


‘인생길 반고비에’……나는 내 인생의 어느 고비에 와 있는 것인지도 모른 채 천년만년을 살 것처럼 살아온 것 아닌지…… ‘어둔 숲 속에 서 있었네’ ……참으로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둔 숲 속인지 아닌지, 즐거운 지옥인지 고난의 천국인지를 밝히 아는 자 그 누구인가…… 그리고 ‘올바른 길’이라니 길은 수천수만으로 나 있는 것인데……!


내 마음이 '어두운 숲'에 버려진 것만 같은 오늘 나는 <신곡>이 가리키는 ‘올바른 길’을 다시 생각한다. 그 길로 향하는 올바른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마음을 열기만 하면, 마음의 손을 내밀기만 하면 지옥편에서든 천국편에서든 어디든 만날 수 있는 그런 마음의 길이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태어났으니 

당신들의 불행은 나를 어쩌지 못하고

타오르는 지옥불도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지옥의 순례를 앞두고 공포에 사로잡힌 영혼의 순례자 단테에게 베르길리우스가 전해주는 천상의 베아트리체의 말은 이러했다. 내가 고국으로 돌아가면 직면하게 될 ‘불행’과 ‘지옥불’을 어떤 마음으로 헤쳐나가야 할지가 분명 해지는 강력한 메시지다. 내겐 그렇다......! 우리의 시인 윤동주도 고난의 시대를 살면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노래했었다. 그러한 마음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 역시 ‘하느님의 사랑으로 태어난’ 사람의 하나가 아닐 수는 없으리라.


대선 다음날 갓 아기 엄마가 된 큰딸 집에 갔더니 사위 안드레아는 고국의 대선 결과에 대해 장인 장모가 몹시 상심해하고 있다는 걸 제 아내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 과자 드시고 그건 잊어버리세요." 그는 이미 끝난 일이라는 뜻의  손 제스처를 하고는 "그래도 5년일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다음엔 나를 이끌어  최근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이탈리아 파시즘의 원조 무솔리니에 관한 매우 두꺼운 역사소설이었다. 나를 그런 방식으로라도 위로하고 싶었던 것이다. 기억 투쟁이야 말로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불요 불가결한 예방책! 산모 딸과 사위가 먹을 점심을 챙겨주고 난 아내가 이탈리아의 정치 상황을 묻자 (아내는 언론 재벌 출신의 상업 방송을 통한 우민화 정책에, 부패에 아주 못 말리는 우파 총리 베를루스코니를 언급한 것 같았는데) 안드레아는 으레 친절하고도 명료하게 대답했다. 현재 바뀐 총리는 우파이긴 해도 좌파의 정책도 적잖게 채택하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세상은 항상 변화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것이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전히 캄캄한 속에서도 나는 혼자 속엣말을 했다.


내일은 테베레 강변에라도 나가봐야겠다. 그리고 <La Divina Commedia>의 천국편을  펼쳐서 제1곡이라도 읽어봐야겠다. 사랑이 끝나 세상이 지옥만 같을 때도 어째서 해는 비치고  꽃은 피며 파도는 치고 밤이면 별이 반짝이는지 도 하늘에든 땅에든 물어는 봐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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