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군의 사람들이 ‘용기·연대·저항’―이 적힌 큰 깃발을 앞세우고 행진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가 끝났을 때 영화 내내 내 안에서 떠돌던 말들은 기어코 물음이 되어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어쨌거나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영화는 끝났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정의의 심판관으로서 신이 죽은 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인가.
영국 북동부의 한 폐광촌 마을로 버스 한 대를 채울 정도의 시리아 난민들이 들어오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들을 도와주고 먹여주고 ‘연대’하고자 하는 이들과 그들을 불청객으로, 침입자로 여기는 이들 간의 갈등은 자연스럽다고 할 세상의 이치다.
‘연대’하고자 하는 이들의 중심인물은 마을 사람들의 오랜 사랑방인 펍(pub) ‘THE OLD OAK’의 주인인 TJ 밸런타인. 그가 가족을 시리아에 두고 탈출한 처녀 야라를 비롯한 난민들을 거듭되는 심각한 혼란과 좌절 속에서도 그 연대의 끈을 놓치지 않고자 한 데는 까닭이 있었다.
그것은 오래전 (1951) 탄광 폭발 참사를 계기로 일어선 광부들의 연대 투쟁의 역사를 담은 흑백사진들 (TJ는 그것을 자신의 펍 한쪽 방 벽에 소중히 간직해 왔다) 속에 고스란히 숨어 있는 것이다. 그 역사가 그의 가슴에 새긴 교훈은 소박하면서도 강력한 한 마디다.
“함께 먹을 때 우리는 더 강해진다.”
우여곡절 끝이긴 해도 마을 사람과 이민자가 THE OLD OAK에서 같이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의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해피앤딩? 그럴 리야. 세상일이 그렇게 쉽다면 우리는 진작 천년왕국을 건설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부자들은 정부와 결탁해 자기 동네에는 안 받아들이는 이민자를 가난한 우리 동네에다 떠맡기고 있다!’ ‘정부는 자국의 폐광촌 주민은 거들떠보지 않고 남의 나라 사람들 신경만 쓴다!’
‘우리에겐 안 빌려주겠다는 펍의 구석방을 이민자들이 밥 먹고 떠드는 장소로는 내놓는 TJ는 (망해버려야 해!)’
연대코자 하는 이들의 반대편에 있는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투덜대고 분노한다. 이 분란을 야기한 이민자들에게 노골적으로 증오의 화살도 보낸다. 그들의 주장도 틀렸다고는 하기 힘들다. 그들도 항변할 이유가 있고 자격도 있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는 것,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결국 문제는 오늘 대한민국에서 사는 나의 태도고 나의 행동이다. 이민자는 차치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혐오 시설’로도 지칭되는 부랑아 수용소라든가 장애인 학교라든가 빈민촌이라든가 교도소 등이 바로 우리 동네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를 생각해 보라.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라는 기도는 기도대로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갈수록 각박하고 험악해지는 듯 보이는 세상사는 우리를 시시각각 ‘시험’하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인 것이다.
같이 먹을 것인가, 모르는 척 나 혼자 먹을 것인가
TJ과 조그만 껌정 개 마라 사이의 우정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동화적이긴 해도 매우 인상적이다. ‘평생 남 좋은 일 한다고 돌아다니다가 제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자살 직전까지 간 TJ를 구하고(!) 외로운 그의 가장 따뜻한 동반자가 된 마라는 영화의 코어 주제인 ‘연대’의 소중함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올해로 여든여덟 인 거장 켄로치가 말하고자 하는 ‘연대’의 실천은 복잡하지 않다. 어렵지 않다.
어린 개 마라도 한 일을 당신이 못할 까닭이 어디 있는가. 고난에 처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자. 외면하지 말자. 혼자 먹으려 들지 말고 함께 먹도록 힘쓰자.
여기에는 ‘희망’이라든가 ‘승리’라든가 하는 관념어는 없다. 희망이 있다면 당신이 내미는 따뜻한 손, 한 그릇의 국밥에 있다는 것. ‘깃발’이 필요치 않다는 게 아니다. 연대는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자신의 작은 손을 타인에게 내밀 용기를 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래서 말해 본다.
‘영화는 끝났다. 그리고 영화관 밖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끝으로 이 영화를 나는 영화관도 TV가 놓인 방 안도 아닌 곳에서 봤다는 사실도 말해두고 싶다.
장소는 <시민운동지원센터> 5층 (부산시 양정동 소재), 상영 주관은 <부산을 바꾸는 시민의 힘 민들레>.
이 시민단체는 매달 좋은 영화 한 편을 선정해 시민들과 함께 관람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마당을 마련해 왔다. (진행은 김상화 영화감독과 이성철 창원대 교수가 번갈아 맡음)
<민들레>의 영화 상영 마당은 켄 로치가 거듭 힘주어 말하는 ‘연대’의 손길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덧붙여 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