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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 둘레길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by 솔바우


아카시아 꽃향기가 진동하는 산길에 오른다.
도시를 끼고도는 둘레 길에서 걸음을 잠깐씩 멈추고
흰말채나무, 국수나무, 때죽꽃, 매발톱꽃들과
산괴불주머니를 닮은 야생화와 눈 맞춤하는 동안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한동안 습관처럼 되뇌던
책 제목 한 구절이 슬그머니 떠올랐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_햇빛이 금빛으로 사치스럽게
그러나 숭고하게 쏟아지는 길을 걷는다는 일
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나는 행복하다_고,
꽤 오래전 고서점에서 만났던
한 여류작가의 생각들이 떠올랐다.

도시를 관통하고 달리는 자동차 소리
새로운 건물을 짓는 소리
세상의 온갖 잡음들이 공명이 되어
산자락을 타고 올라와 산새들의 지저귐과 어우러져
살아 있음을 실감케 하는 이 순간에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만난 후 그것은 하나의 주문이 되었다.



도시를 끼고 산그림자를 밟으며 걷는 둘레길, 꽃 뒤에 붙은 꿀주머니가 움켜진 매의 발톱을 닮아 '매발톱꽃'이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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