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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우 Oct 26. 2020

​ 11. 문학의 기초는 산문


 이 매거진을 처음 기획할 때만 해도 한 주일에 하나씩 올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체 일정이 흐트러져 계획대로 다. 내가 사는 지역에 두 번째 파도가 넘실거리듯 C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하는 바람에 모든 모임이 사실상 제한되었다. 7월초에 이어 8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3주간 문학교실 운영이 중지된 것이다. 대신 전담 강사님으로부터 휴강기간에 동안 수필이나 창작시 2편을 제출하는 과제를 받아 들었다. 출근하는 날이 아니면 집안에서 조용히 보내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이 기간 동안 가끔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가까운 산자락이나 강변에 바람을 따라다녔다.


그리고 알고 보니 순천에는 대략 20~30년 넘게 정모임을 갖고 정기 동인지를 발행하는 문인단체 4개 활동 중이었다. 마침 우리 문학교실에서 함께 강의를 듣고 있는 문우들 가운데에도 이러한 문학동인회에 적을 두고 있는 이들이 몇 명 있었다. 그러한 까닭에 상당한 수준문우들로부터 문예 창작에 대한 동기 부여와 직·간접적으로 글쓰기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간만에 문학교실이 중지되기 전 강의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미술의 기초가 스케치라면 수필의 기초는?

문학성이 있는 작품은 문장이 좋다. 그런데 울림이 있다고 해도 반드시 문학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울림이 있는 글이라도 문장의 정확성이 요구되는데 훌륭한 글은 졸렬하지 않다. 미술의 기초가 스케치라고 할 때, 문학의 기초는 산문, 즉 바른 글쓰기이다. 수필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 바른 글쓰기의 능력이 요구된다. 글에는 리듬이 있어야 하고 물 흐르듯이 읽혀야 한다. 문장에는 단문과 장문이 있는데 단문의 글은 내용의 전개 과정이 빠른 매력이 있다. 이에 비하여 장문은 문장이 복문으로 이루어져 느낌이 유장하고 깊은 맛이 있다. 이 두 가지를 배합하여 쓰면 전체 문장균형을 이룬다.

미술에서 드로잉 과정하나인 스케치는 사물이나 착상의 얼개만을 빠른 시간에 그리는 기법으로, 스케치로 그린 그림은 완성되지 않은 그림이다. 주로 미술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예비 디자인을 기록해 두기 위해 사용한다.­(나무위키)

수필의 소재 찾기

수필의 소재는 우리 주변에 널리 존재­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자신의 시각으로 풀어낼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 20평 남짓한 뜰을 가졌다. 이른 봄부터 뜰에는 <봄의 경영>이 자못 활발하다. 개나리가 핀다. 진달래가 피게 된다. 개나리는 개나리대로 아름다­움을 가졌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아름답다. (중략) 20평 남짓한 작은 뜰에서 내가 발견하는 것은, 시시각­각으로 변모하는 행복의 얼굴이다. 박목월, 『행복의 얼굴』


가는 자신의 작은 뜰을 바라보며 소소 행복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어쩌다 시골길을 걷다가 한국산 토박이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나게 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바람에 시달리고 또 싸워온 아픈 흔적이 보인다. 차라리 돌에 가까운 나무다. 한국 소나무처럼 바위와 잘 어울리는 나무도 아마 없을 것이다. 꼿꼿이 하늘로 뻗은 서양 포플러 나무와는 얼마나 다른가. 이어령,『소나무형 문화』


시골길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소나무를 통해서 한국문화를 연상하며 포플러와 비교하고 있다.

-- 출판사 H에 들려 소관사를 마치고 막 나오려는데 양장 차림의 한 중년 부인네  분이 사장실로 들어왔다. 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그런 양장이 아니고, 슬랙스 비슷한 아랫도리에 스포티하게 몸차림을 한 활동적인 스타일이 눈에 선했다. (중략) 여류작가 P여사였다.
 “P선­생은 마치 딸라 장수 아주머니처럼 차리­시고도 그렇게 좋은 작품만 쓰시지요......” 우리말 어휘가 모자라서 언제나 외국어 같기만 한 나로서는, 이것이 수식도 에누리도 아닌 진심의 찬사였다. 내 말이 떨어지자 P여사는 안색이 변하였다. 김소운,『실언』


 실제 자신이 겪었던 일을 소재로 쓴 경우이다.


을 통해서 독자에게 어떤 내용을 전달하고자 하는데 이것을 주제라고 한다. 수필은 삶의 일부으로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사물로부터 얻을 수 있다. 그 과정에는 몇가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사물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동일 사물을 한 사람이 바라보더라도 어떠한 생각이나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라도 그것을 보고 글로 옮길 경우 다양한 형태로 생각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오이를 심으면 오이를 거둔다. 그래서 옛사람은 종두득두(種豆得豆), 종과 득과(種瓜得瓜)라고 했다.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날 수도 없고 팥을 심었는데 콩이 나는 일도 없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둔­다. 심지 않고는 거둘 수 없다. 안병욱,『심고 가꾼 만큼 거둔다』

둘째, 자신만의 방식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만 사회적 지탄의 소지가 있는 점은 배제하고 상식의 토대­ 위에서 사고의 확장을 통한 창의적인 발상의 태도가 요구된다.

-- 열매만을 소중히 생각하는 시대에서는 꽃의 의미가 망각되기 쉽다. 식탁에 오르지 못한다는 구실로 사치한 품목에 끼이기 쉽다. 꽃은 문화의 은유법이다. 우리는 꽃이 비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가끔 분노 하듯이 피어있다고 생각되는 적이 많다. 이어령,『문화의 은유로서의 꽃』

셋째, 표현의 다양성이다. 표현과 내용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어야 한다. 어휘력이 풍부하면 문장이 유려해지고 글 쓰는 데에도 유리하다. 어법에 맞는 문장, 바른 맞춤법의 이해가 필요하다.

-- 언제나 외롭고 적막한 자태. 서구의 시인들같이 벌판에 만발한 흐뭇한 광경을 보지는 못했으나 그 역 그 빛깔, 그 자태로는 번화하고 명랑할 이는 없다. 원래 슬프게 태어난 꽃이라 시인들은 자꾸 슬프게만 노래한­다. 수선은 자꾸자꾸 슬픈 꽃으로 변해간다. 이효석,『수선화』

한편 르네 웰렉은 『문학의 이론』에서 수필의 종류에 대하여 과학적(실험, 연구), 문학적(은유, 비유, 아이러니), 일상­적(경험, 여행) 내용을 토대로 분류하였다.



오늘의 강의교재

『수필 창작 어떻게 할 것인가』, 김상대,푸른사상,2004

※ 표지 사진은 '차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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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이론』, 르네 웰렉 / 이경수 역, 문예출판사, 2002년
문학의 본질과 기능, 문학과 인접 분야와의 관계, 문학의 내재적인 분석 등 문학에 관한 제반 이론을 방법론적으로 광범위하게 고찰한 문학연구서의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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