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음이 타는 가을 강 / 박재삼
깊은 생각 없이 훌쩍 바람처럼 드라이브를 나설 때가 있다. 가끔 그렇게 하고 싶은 날이 있다. 지난 휴일에는 집을 나와 남해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린 후 남해읍으로 들어가는 노량대교를 거쳐 사천으로 이어지는 다리 위를 바람처럼 날아서 건너보고 싶었다.
남해 쪽에서 사천으로 건너가려면 먼저 창선교를 지나야 하는데 이 다리를 건너기 직전, 우측에 멸치쌈밥 거리가 있었다. 근처 바다에서 잡은 멸치를 쌈밥으로 먹을 수 있는 식당들이 영업 중인데 이곳뿐만 아니라 차로 이동 중에 보니 멸치식당 간판이 심심찮게 보였다.
남해 본섬에서 창선교를 지나면 창선도가 앉아있다. 청명한 하늘과 그것을 닮은 잔잔한 바다가 잘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푸른 바다 위를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달리는 상쾌함은 더할 나위 없는 마음의 호사이다.
그리고 창선도에서 늑도, 초양도, 모개섬을 징검다리 삼아 늑도대교, 초양대교, 삼천포대교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면 삼천포항에 이른다.
이렇게 육지와 섬, 혹은 섬과 섬을 잇는 연륙교나 연도교가 줄지어 서 있는 곳들이 우리나라에 몇 곳 있다. 예를 들면 여수반도 끝자락에 있는 화양면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고흥반도로 이어지는 곳에도 다섯 개의 각기 다른 공법으로 설치된 교량들로 섬과 섬이 연결되었다. 또 여수 화양면에서 동쪽으로는 돌산도에 이르는 곳에도 여섯 개의 교량이 일부 개통되었거나 일부는 수년 내 완공될 예정이다.
오후 늦은 시간에 도착한 삼천포항. 시장기가 들어 저녁 식사를 하려고 적당한 식당을 물색하여 주차하려는데, 식당 근처에 노산공원이 있고 공원 입구에 사천시 관광안내도가 서 있었다. 그리고 공원 안내판에는 박재삼 문학관이 표기된 게 아닌가?
삼천포에서 만난 박재삼 문학관은 의외의 조우였다. 다음 날 특별한 일정이 없었던 나는 이튿날 오전 중에 공원을 돌아보아야지 생각하고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바닷가식당에서 회 한 접시와 마주하였다.
사실 가벼운 마음으로 드라이브를 나와 삼천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나의 발걸음이 여기에서 머무른 것은 순전히 박재삼 시인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라는 시 한 편 때문이었다. 지난해 말 이 시와 친해지면서 제목 자체가 끌어다 주는 짙은 감성으로 단숨에 이 시가 뇌리에 각인 되었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시향이 시월의 햇살을 받은 국화처럼 진하게 느껴졌다. 친구의 사랑 이야기를 쫓아가다 보니 인생의 유아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는 여정들이 펼쳐지고, 따사로운 가을볕이 강가의 마른 풀잎 위에 떨어지고 있었다.
이튿날 손이 시릴 정도로 쌀쌀한 아침 공기를 헤치고 찾아간 식당에서 콩나물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 유유히 노산공원으로 오르는 계단을 걸어 문학관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입구 벤치에 앉아있는 박재삼 시인의 좌상 옆에 나란히 앉아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더니 문이 잠겨 있었다.
의아한 마음에 입구 유리문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보니 <월요일 휴관>이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아뿔싸, 이런 걸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고 일부러 근처에서 숙박까지 하고 문학관을 방문한 나의 불찰에 대하여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상황은 이리되어 버린 것을. 건물 밖을 잠시 서성이다가 공원을 한 바퀴 쭉 돌아보았다. 해안가 언덕 위에 자리한 노산공원 안에는 곳곳에 붉은 동백꽃이 피고 지고, 한편에 설치된 박재삼 시인의 「천년의 바람」 시 일부가 기념비에 새겨져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는 길목에 소나무 숲 사이로 아름다운 정자가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 속에 의연히 서 있다. 해변에는 「삼천포 아가씨」의 노랫말과 가사에 나오는 아가씨가 갯바위에 앉아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임을 한없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