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바우 Jan 08. 2022

나의 애송시 (2) 가지 않은 길

-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나의 애송시 (2)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


 은행에서 볼 일을 마치고 난 시간이 이미 오후 세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대라 한산한 식당을 들어서며 차림표를 보니 곰탕이나 설렁탕, 도가니탕 등 식단이 눈에 들어온다. 1초도 생각을 고를 것도 없이 바로 도가니탕을 주문하였다. 스스로 도가니탕을 주문해본 게 언제였을지 기억이 희미하다. 예전에 종로통 뒷골목에서 이런 식당들이 더러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이라는 선입견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내가 부지불식간에 이런 음식을 찾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자연스럽게 식당 한쪽 벽면에 걸린 아크릴판에 담긴 대형 그림으로 눈이 갔다. 순천만 갈대밭, 그 사이를 구불구불 휘감고 흐르는 강물과 드넓은 갯벌이 살아 숨 쉬는 모습 속에 비치는 햇살이 눈부시게 황홀했다. 

 강물이 바다에 이르는 동안 개울물이 모여 하천을 이루고, 그 하천들이 모여 큰 강으로 흐르며 종국에는 바다에 다다른다. 강물이 흘러가는 과정에 어느 물목에서 다른 지류의 물줄기와 합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반대로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기로(岐路)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는 순간들이 있다. 어느 길을 선택하는 게 바람직할지 또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현명한 판단일지 확정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결과가 예상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선택해야 할 그 순간에는 고민이 따름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다른 길은 같은 시간 속에서 병립할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기로에 서게 될 때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떠올리곤 하였다.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을 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사람들은 수많은 갈림길에서 하나의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수용하지만 처음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결과 앞에서 반성과 후회를 할 때도 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삶 속에서 형성되는 특별한 기억의 순간마다 하나의 점으로 찍어 놓고, 그 점들을 선으로 연결하여 그래프를 완성하듯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점선으로 이어진 굴곡이 개인별 발자취가 되어 도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다른 시 가운데 삶의 전환점을 맞은 사람들의 마음을 잔잔히 다가오는 시가 있다. 예전에 퇴직하는 선배 공직자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시이다. 정작 내가 퇴직한 후에 다시 접하고 보니 가슴속에 작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와 공명한다. 


 



 인생 전환기를 맞아 한해의 시간이 훌쩍 지나는 동안 내 삶에 변화가 좀 있었다. 조금 늦어진 아침 식사 시간대, 샌드위치에 우유와 커피 한 잔으로 간단히 바뀐 아침 식단이 그러하다. 점심시간이 늦은 시간대로 밀렸다는 점 등도 그러한 변화 중의 하나이다. 

원래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도 그랬지만, 밤 12시 전에 잠자리에 드는 경우가 적은 것은 여전하다. 심심찮게 다른 도시에 사는 지인들을 만난다. 집 근처 야산에 오르거나 호수공원 산책을 하기도 하고 영화관에 들르기도 한다. 

간혹 낚싯배에 올라 갑오징어, 낙지, 돔, 갈치 등을 낚으러 바다로 향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 가운데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새로운 활동공간을 마련해 보려고 이런저런 정보를 탐색하는 일이다. 아직 활발히 활동할 수 있을 만큼의 신체와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고 있으니 적당한 일거릴 찾아보고 있다. 

그러나 할만한 일이란 게 한정적이고 코로나19의 여파로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도 위축된 상황에서 원하는 활동무대를 얻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서두를 것이 없이 짧지 않았던 직장생활에서 체득한 지식이나 지혜를 풀어 사회에 봉사하고 공헌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아직 가지 않은 길을 모색하고 있는 셈이다.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 미국 시인. 농장의 생활 경험을 살려 소박한 농민과 자연을 노래한 미국의 계관시인적(桂冠詩人的) 시인. (두산백과)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애송시 (1) 목마와 숙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