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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우 Apr 04. 2022

나의 애송시 (14) 꽃

- 꽃 / 김춘수

나의 애송시 (14) 꽃 / 김춘수

 


여기도 꽃! 저기도 꽃! 발길이 닿는 곳마다 사방이 그야말로 꽃 세상이다. 꽃은 항상 우리 주변에서 사람과 벌과 나비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일부 사람 중에 화분증이라든가 알레르기 때문에 가까이 두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조차도 꽃의 다양한 향기와 아름다운 빛깔을 싫어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꽃은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 결과는 문학, 회화, 음악 등으로 표현되어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존재이다.

이른 봄날부터 시작된 꽃들의 향연은 점점 절정을 향하여 달려가는 느낌이다. 요즘 섬진강의 양안(兩岸)에 늘어서서 만개한 벚꽃 가로수길에 차량의 행렬이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매년 연례행사가 된 이 장사진을 바라보며 올해는 역병으로 위축된 일상의 모든 활동이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를 기원해본다.     

 


우리의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친밀한 관계에 있다 보니 평소에는 꽃에 대하여 깊이 의식하지 못하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을 보 가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첫 번째초등학교 저학년 때 동네 친구들 두세 명과 진달래꽃이 한참 피어나는 동네 뒷산에 올라갔던 일이다. 처음에는 몇 송이를 따 먹으며 놀다가 내려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연분홍이나 진분홍 진달래꽃이 얼마나 탐스럽게 피었던지 경쟁적으로 꽃잎을 하나둘 따는 동안 어린 마음에도 그 아름다움에 반하여 깊은 산속까지 들어가고 말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방향도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산중에 닿아 있었다.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서로 얼굴로 마주 보며 어림짐작으로 조심조심 마을로 돌아온 적이 있다. 꽃잎을 따먹은 혓바닥과 입술이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주머니마다 여기저기 뭉개진 진달래꽃이 가득하였다.    

 


두 번째 기억은 19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닐 때이다. 나는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살았기 때문에 통학에 부담을 갖지 않아도 좋았다. 그러나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은 재를 넘고 들을 지나 십리길을 걸어 다니는 학생도 꽤 많았다. 이 거리는 어린 학생들 매일 걸어서 왕복으로 통학하기에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그 무렵에는 마을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애향단(愛鄕團)”이라는 조직이 있었는데, 마을 이름이 적힌 노란 깃발을 든 학생이 선두에 서고 아이들은 줄을 서서 동를 부르며 등교하였다. 같은 동네의 학생들이 시간에 맞추어 함께 등교함으로써 에 샛길로 빠져 결석하는 학생도 줄었고 혹시 모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토요일마다 마을별로 애향단 깃발을 앞에 세우고 전교생이 운동장에 늘어서서 교장 선생님의 길고 지루한 훈화를 들으며 종례을 치러야 했다.


애향단의 역할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요즘 같으면 상상하기도 어렵겠지만, 한 달에 한두 차례쯤 빗자루를 들고 나와 마을 골목길 청소를 하기도 하였다. 한 번은 누가 어디서 구했는지 코스모스 씨앗이 들어 있는 작은 봉투를 몇 개 얻어왔다. 아이들은 길가에 양쪽으로 줄을 섰다. 그리고 맨 앞에 선 아이가 막대기로 줄을 긋듯이 땅에 골을 파면서 지나가면 다음 사람은 그 골에 꽃씨를 조금씩 넣고, 그 뒤에서 따라오는 아이들이 가볍게 빗자루로 흙을 쓸어서 골을 메웠다.

시간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새싹이 나오고 하루하루 눈에 띄게 자라는 게 보였다. 어느덧 가을이 왔다. 넓은 한길을 뒤덮을 기세로 자라던 코스모스는 결국 2m 넘을 정도로 무성하게 성장하여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코스모스가 너무 무성한 나머지 행인들에게 방해가 된다며 어른들이 줄기를 베어내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될 정도였다.

다행히 코스모스는 씨앗이 알차게 여물 때까지 그해 인근에서 화제가 될 정도로 명성을 크게 얻으며 계절을 마감하였다. 그 후로 나는 여러 곳에서 예쁜 코스모스 꽃을 만났지만, 그때의 코스모스를 능가할 만큼 울창하고 화려한 꽃을 아직까지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때 함께 코스모스 꽃길을 만들었던 아이들은 기업의 경영자가 되거나 고위급 장교가 되었고 혹은 영농후계자가 되어 특수작물을 짓는가 하면 공직에서 성실히 역할을 하며 나름대로 고운 향기를 가진 꽃 피웠다. 내가 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꽃이 있다면 어쩌면 아름다운 생각을 품은 사람의 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데, 그 발단은 김춘수 시인의 <꽃>을 만난 이후일 지도 모르겠다.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시는 1959년 백자사에서 발행한 『꽃의 소묘』 실다. 세상 울긋불긋한 꽃들로 화려한  놓이고 있다. 꽃들이 지고 나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여름 동안 열매가 익어갈 것이고 어느덧 가을 추수가 끝난 후, 텅 빈 들판을 달리는 차 창 밖 겨울 풍경은 무채색 위로 이따금 내리는 눈으로 설경이 펼쳐질 것이다.

그렇게 침묵의 시간이 지나면 경쟁하듯 푸른 초목들이 또 자리를 잡는다. 계절의 순환은 한 치 흐트러짐 없이 다가오고 떠나간다. 우리 인생도 자연의 리 속에서 오고 가리라. 그 과정에서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따뜻한 의미가 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김춘수 시인은 (1922~2004) 경남 충무 태생으로 일본 니혼대학 예술과를 중퇴하였고, 1948년 시집『구름과 장미』의 간행을 계기로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한때 통영중학교와 마산고교 교사, 마산대, 경북대, 영남대에서 교수로 재직하였고 1981년에는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시집으로 『늪』, 『기』, 『인인』, 『꽃의 소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타령조 기타』, 『들림, 도스토예프스키』), 『의자와 계단』 등 15권 정도 있다.

그리고 시론집으로 『한국현대시형태론』, 『시의 이해』, 『의미와 무의미』 등이 있고, 1986년 『김춘수 전집』(1권 시, 2권 시론)을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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