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도 국가나 민족 간 이해관계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고, 지구촌 어딘가에서 전쟁 중이거나 그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현재 러시아만 하더라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국제적으로 수많은 비난을 받고 있으며 경제제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이유는 복합적이겠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먼저, 구소련 시절에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유럽에 공급하기 위하여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여러 개의 파이프라인이 설치되었다. 당시에는 우크라이나가 소련연방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연방에서 독립한 후에도 우크라이나는 가스관의 통행료를 받으며, 러시아로부터 침공을 막는 방어막이 되기도 하여 지금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2012년 발트해를 거쳐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가스를 직접 공급하는 노르드 스트림 가스관 1단계 공사가 완료되었다. 거기에다 2018년 착공하여 2022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하는 2단계 파이프라인 공사가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 2단계 공사가 완료되면 이 라인을 통해서 유럽에서 사용하는 천연가스의 사분의 일 정도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의 입장에서 볼 때, 자국의 영역으로 지나가던 가스관의 통행료 수입이 줄거나 없어진다. 또한 러시아로부터 상시 위협에 놓이게 되므로 자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북대서양 조약기구인 NATO에 가입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는 것을 수수방관하지 않겠다고 벼르는 상황이다. 즉 러시아는 서부 국경 지역에 NATO군의 공격형 무기가 들어오는 것에 지극히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미국이 유럽 국가들을 설득하여 이러한 러시아를 제재하려고 해도 유럽은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공급받아야 하는 처지이므로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어렵다. 사정이 이러하니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한 우크라이나가 큰 어려움에 부닥쳐 있는 것이다.
유엔의 중재로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거나 철수를 종용하려고 해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중의 하나인 러시아가 반대하면 실행할 수 없는 구조이다.
4월 5일 바로 어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 회의의 실시간 화상 연설에서 자신들은 안보리 거부권을 죽음의 권리로 바꿔 사용하는 나라를 상대하고 있다며 “부차 학살”사건과 관련하여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에서 퇴출할 것을 요구하였다.
부차(Bucha) 학살 : 부차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브의 북서부에 위치하는 도시로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의도적 학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러시아군에 의해 강간당한 여인, 공무원과 노약자 등 손발이 묶인 채 고문을 당하거나 후두부에 총상을 입고 죽임을 당하였다. 수습해서 매장한 시신만해도 280구에 이른다.
현재 일부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중지와 우크라이나 본토를 경유하는 천연가스관의 지속적이고 안전한 경로 확보, 이미 러시아에 귀속된 크림반도에 이어 추가로 부동항(不凍港; 친러 성향의 돈바스 지역)의 확보라는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을 전제로 러시아가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올해 2월 24일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양측의 사상자는 적어도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개미는 근면함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image-1)
인간들이 일으키는 전쟁은 보통 종교나 안보, 혹은 민족 간 이해관계, 에너지나 식량 자원을 확보하려는 데에서 발발한다. 이성을 지닌 인간사회가 이토록 커다란 희생을 치르며 얻고자 하는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 떠오르는 광경이 있다.
등산로나 시골 비포장길을 걷다가 보면, 간혹 아주 특이한 광경이 목격된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수천 마리 혹은 수만 마리의 개미들이 떼죽음을 당한 채 길 위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다. 주변에 살아있는 개미는 한 마리도 안 보인다.
이 작은 미물들은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저토록 새까맣게 땅 위에 머리나 몸통이 잘린 채 쓰러져 죽어있는 것일까 매번 의아스러웠다. 이들에게도 종족 간 원한 같은 감정이나 영역 다툼과 같은 이유가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종족 번식에 필요한 여왕을 빼앗기기라도 하였을까?
예전에 읽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보면 개미들은 페로몬으로 의사를 소통한다. 그 책의 내용을 일부 인용해 본다. 인간이 두려움이나 즐거움, 분노 등을 느끼게 될 때 내분비샘에서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인간의 몸 안에서 영향을 끼칠 뿐 외부와 교류하지 않고 각자의 몸 안에서만 순환한다.심장이 빨라지거나 땀이 나고 얼굴을 찡그리는 등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그 한 사람의 일이지 옆에 있는 사람과는 무관하다.
그런데 개미가 두려움이나 즐거움, 분노를 느끼게 되면 호르몬이 내부에서 순환할 뿐만 아니라 몸 밖에 있는다른 개미의 몸으로도 들어간다. 이 몸 밖의 호르몬은 페로-호르몬, 또는 페로몬이라고 한다. 한 마리의 개미가 울려고 하면 그 감정이 페로몬을 타고 전이되어 동시에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개미 한 마리의 감정이 그 종족 모두에게 옮아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그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우리가 내려다보는 개미들의 작은 세계가 있듯이 우리를 지배하는 거대한 힘이 또한 존재하는 것이 우주의 섭리이다. 나는 이경림 시인이 개미를 바라보며 그런 느낌으로 우주의 아득한 힘을 보고 있지 않았을까 짐작하여 본다.
개미는 페로몬을 통하여 의사를 전달한다(image-2)
개미 (1) / 이경림
등가죽과 뱃가죽이 붙은 자들이
일렬로 서서 죽은 듯
가고 있었다
어떤 발굽이 선봉(先鋒)의 한 무리를 밟고 지나갔다
뒤따르던 자들은 잠시,
우왕좌왕하는 듯했지만
금방 다시 줄이 잡혔다
뭔가 잔뜩 이고 진 듯
그저 빈 몸인 듯
저 위에서
황금 부처가 빙그레
내려다보고 있는
가이없는 얼음장의
그 법당 바닥
누군가 떨어뜨린 검은 실 한 파람 같은
위의 시는 이경림 시인이 「개미」라는 제목으로 쓴 두 편의 시 중 하나이다. 처음에 동명이인의 시인가 하고 확인해보니 같은 시인이 맞다. 그래서 나는 편의상 개미 (1)과 개미 (2)로 구분해 보았다. 개미 (1) 은 『창작과 비평』 2005년 겨울호에 실렸고, 개미 (2)는 2019년 창비사가 발행한 『급! 고독』에 실린 시이다.
개미 (2) / 이경림
첫새벽, 화장실 다녀오는 길에 보았다
어떤 묵언처럼
곰곰 지나가는 당신을
문득 달려든 형광 빛도
천 길 위에서 내려다보는 한 시선도
상관없다는 듯 그저
가지런한 속도로 지나가고 계셨다
형용을 알 수 없는 쬐그만 얼굴로
털실 보푸라기 같은 다리로
끊어질 듯 가는 허리로
집채만 한 허공을 지시고
거대한 식탁의 다리를 지나
의자 다리를 돌아
내용 없는 상자의 긴 모퉁이를 돌아
바싹 마른걸레 위 울퉁불퉁한 길을 힘겹게 지나
얽힌 전선들 사이로 난 끈적한 길을
다만 지나가고 계셨다
발소리 하나 없었다
한번 뒤돌아본 일도 없었다
어디에서 나와 어디로 가는 길이셨는지
눈 깜박할 사이 거대한 은빛 냉장고 밑으로 사라지셨다
잠결이었다
오줌 누러 갔다 오는 몇 발짝 사이
어떤 미친 시간이 오토바이를 타고 굉음으로
달려가는 사이
글쎄 백 년이 지났다고!
총총히 움직이는 인간들, 혹은 개미? (image-3)
위 두 편의 시를 읽으면서 역설적이지만 나는 시인이 개미들의 작은 세계를 통해서 절대적인 힘이 존재하는 또 다른 어떤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경림 시인은 1947년 경북 문경에서 출생하여 1989년 계간 『문학과 비평』을 통해 「굴욕의 땅에서」 외 9편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토씨 찾기』, 『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 『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 『상자들』, 『내 몸속에 푸른 호랑이가 있다』 등이 있고 산문 시집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와 산문집 『언제부턴가 우는 것을 잊어버렸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