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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우 Sep 13. 2019

부부의 호칭, 당신을 부르는 말 <다지금>

이제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일가도 남아 있지 않기에 명절이라고 해도 찾아갈 일이 별로 없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 있다. 가슴속에 항상 먹먹한 감정의 부스러기 같은 게 남아 있는 그 공간, 고향이다.
동이 트기도 전에 기상하신 부모님이 그날그날의 일들을 의논하며 아버지는 볏짚과 고구마 줄기, 수숫대 등을 말렸다가 작두로 잘게 썬 여물과 쌀겨 등을 넣어 쇠죽을 쑤셨고 어머니는 아침밥을 지으며 부엌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그런데 한달에 한번쯤 여물을 썰때마다 아버지는 재료의 종류에 따라 손가락 두세마디의 길이로 볏짚 등을 작두틀에 연달아 집어 넣으면 나는 두손으로 힘껏 작두 손잡이를 잡고 허리를 숙여 아래쪽으로 눌러 여물을 사각사각 잘랐다. 한달가량 쇠죽으로 끓여 먹일 양이니 나로써는 매번 꽤나 성가시고 힘든 작업이었으나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인이 되신 아버지가 어머니를 부르는 호칭은 <다지금> 이었다. 어려서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그렇게 부르는 연유를 몰랐는데 나중에 ‘개인’ 혹은 ‘자기’를 뜻하는 전라도 쪽에서 쓰던 사투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사어가 되어 전혀 들어 볼 수가 없으나 예전에는 더러 사용했던 것 같다. 나는 어쩌다 인연이 된 아내를 만나 결혼하였고, 한 가정을 꾸린지도 상당한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아이들이 모두 자라서 언제라도 제짝을 찾아 자신들의 둥지를 꾸려도 될 만큼의 시간들이 흘렀건만 아직 정립되지 못한 것이 있으니 내가 아내를 부르는 호칭이 그러하다.

‘어이! TV 리모컨 어디 있어?’
‘OO엄마! 주말에 어머니 뵈러 가자고 했지?’
‘O여사! 오늘 저녁 먹고 들어갈게.’

결혼 후 한동안 ‘어이’하고 부르다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OO엄마’, 그러다 또 얼마나 시간이 흐른 뒤에는 ‘O여사’와 같이 호칭의 변화가 있었으나 정작 그 흔한 ‘여보’ ‘당신’ 같은 호칭은 제대로 한 번 불러 적이 없으니 나도 어지간히 무던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무심하다고 해야 할까? 생각해보면 아내 역시 나를 부르는 호칭이 애매하다.
드라마 같은 데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보’, ‘당신’과 같은 호칭을 쓰지만 우리 부부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그 이유는 결혼 초기에 그 호칭이 갖는 느낌이 뭔가 쑥스럽고 계면쩍음을 자아내고, 혹은 도회지적 이미지 등이 얼버무려져 둘 다 무뚝뚝한 우리 부부의 성향에는 맞지 않았고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알 수 없는 거부감과 같은 감정의 탓일지도 모른다.

익숙함이란 부모, 형제를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이 평소 얼마나 자연스럽게 배우자를 부르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과 부부 당사자가 처음부터 호칭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대하여 무언을 포함한 상호주의적 약속이 성립되지 않음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나름의 적당한 단어 선택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부부간 호칭을 꼭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정해진 바는 없다. 당사자가 서로 공감대를 이룰 수 있을 정도의 선에서 부르기 편한 단어를 선택하여 부르면 그만이라고 생각될 뿐이다.

가끔 연애시절의 연장선에서 결혼 후에도 ‘오빠’ 라거나 아이들의 입장에서 ‘아빠’라고 부르는 경우를 대할 때가 있다. 누군가가 ‘오빠’나 ‘아빠’라고 배우자를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그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적합한 호칭을 선택하게 될 거라고 여겼던 기억이 난다.

예전에 유행했던 노래가사가 생각난다. 최백호의 <어이>이다. 누군가는 아내를 부르는 호칭이 <어이>가 뭐냐고 탓할지도 모르지만, 그냥 그것이 자연스러웠을 뿐이다. 아무튼 나는 배우자의 호칭에 대하여 듣기 좋고, 부르기에도 좋은 이름을 갖는데 대하여 지극히 찬성한다. 지금의 호칭이 언제쯤인가 다시 정리될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며...



어이 / 최백호

나 떠나고 당신 남으면 험한 이 세상 어찌 살래
나 남고 당신 떠나면 혼자 그 먼길 어찌 갈래
손 꼭 잡고 살아도 같이 갈 수 없는 이 길
사랑하며 살지 용서하며 살지
긴 세월 짧은 인생 웃고 울며 살지

아이들 자라 제 갈길 가고 하늘아래 둘만 남으면
내가 항상 곁에 있을 게 내가 항상 지켜줄게
마주 보고 살아도 따로 가야 하는 이 길
사랑하며 살지 용서하며 살지
긴 세월 짧은 인생 웃고 울며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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