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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우 Oct 28. 2019

가을빛 주암호, 탱고를 품다

호반길에 만난 풍경



삶의 터전을 남도로 삼은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이곳을 중심으로 남해안 일대는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이지만, 특히 방문할 때마다 편안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동하면 마실 나들이하듯 수시로 찾아가는 공간들이 몇 곳 있다. 집에서 가까운 순천만 갈대밭과 송광사, 선암사, 낙안읍성, 와온해변, 향일암, 보성차밭 등이 그러한 곳이다.

그런데 선암사나 낙안읍성을 갈 때마다 빠른 길을 마다하고 굳이 호반을 끼고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천천히 가는 상사호길을 꽤 선호한다. 봄에는 벚꽃이 터널을 이루고, 가을이면 홍엽에 물든 숲 속을 달리는 느낌이 참 유쾌하기 때문이다. 이 길은 상사호와 어우러져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이다. 게다가 더 기분 좋은 것은 이 길을 다니는 사람이 적다 보니 인파에 휩쓸려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왕복 이차선이지만 창문을 열고 여유를 부리며 다녀도 되니 마음마저 넉넉해지는 호사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혹시 뒤따라오는 차가 있을 경우에는 먼저 가라고 신호를 넣어 주고 양보하면 그만이다.

​ 지난 주말에도 원거리에 있는 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귀가할 때에는 역시  고속도로에서 일부러 승주 IC에서 빠져나와 상사호를 끼고 조금 우회하는 호반길을 택하였다. 남녘도 이제 본격적으로 단풍이 들기 시작했지만 절정은 11월 중순 정도로 예상된다. 그래도 계절이 바뀌는 시기라서 그런지 평소보다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자동차로 달리다가 상사호길 중간쯤에 위치한 상사댐이 자리 잡은 휴게소에 들렀다. 평소와는 달리 무슨 행사가 있는지 음악소리와 더불어 광장에 행사용 텐트가 여러 개 처져있고 댐이 있는 쪽에는 무대가 마련되어 있기에 다가가 보니, ‘가을빛 주암호 탱고를 품다’는 플래카드를 배경으로 심사위원들이 탱고 경연대회에 나온 선수들을 열심히 주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정장한 남성과 몸에 착 달라붙은 롱드레스와 높은 힐을 신은 여성이 탱고 음악에 맞추어 추는 춤은 때로는 힘차게 때로는 유유히 흐른다. 남녀가 한 조가 된 선수들의 절도 있는 춤사위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다만 전기난로가 여러 개 준비되어 있기는 했지만, 바람 부는 호숫가에서 등이 드러난 옷을 입은 출전 선수들이 다소 쌀쌀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경연이 끝난 선수들은 준비한 롱코트를 걸치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다른 사람들의 경연을 감상하였다.


탱고는 ‘만남의 장소’, ‘특별한 공간’을 의미하며 19세기 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처음 등장했고, 초기에 ‘바일리 꼰 꼬르떼(baile con corte)’라 불리었다고 한다. 남성은 목이 긴 부츠에 쇠발톱(spur)을 달고 가우초(gaucho)라는 바지를 입고 여성은 풍성한 스커트를 입었는데, 그와 같은 복장을 하고 춤을 추려고 애쓰다 보니 만들어진 동작들이 있는데, 그것이 오늘날 탱고의 기본 동작이 되었다. 탱고는 20세기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초기에는 경쾌하고 활기찼으며, 1915년경 유럽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1920년경부터 분위기가 우수의 정서를 띠게 되면서 스텝도 실내 무도 스텝으로 부드럽게 변하였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호반에서 개최된 탱고 경연 관람을 마치고 다시 차에 올라 산을 내려오다가 길가에 잠깐 차를 세우고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파도가 출렁이는 호젓한 호수를 바라보니, 가을이 깊어간다는 느낌이 확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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