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수상한 전화를 받다
- 투자협약(MOU) 체결, 그 이후
“안녕하십니까? 실례지만, OOO이신가요?”
“네, 맞습니다만, 어떻게 전화 주셨습니까?”
“여기는 서울 S경찰서 OOO수사관인데요, 오늘 고소장이 접수되어 확인 차 연락드렸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며칠 전 오전 회의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와 앉자마자, 서울 소재 S경찰서에서 나를 찾는 전화가 직통으로 걸려왔다. 평소 경찰서로부터 전화받을 일이 없는지라 뜬금없는 고소장 접수 운운하며 걸려온 전화에 순간 의아한 마음으로 고소 내용을 파악해보니, 4년 전인 2015년에 율촌 1 산단에 투자하겠다며 찾아온 E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E사는 외국인 투자자금을 조달하여 인조목 생산을 하겠다고 하여 투자 협약(MOU ; memorandum of understanding)을 체결한 바 있는 기업이다.
인조목人造木
합성수지 소재를 활용하여 인공적으로 나무 형태와 나뭇결을 연출한 해상 구조물, 해양 부표, 공원 데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건축재료 중의 하나
율촌 1 산단에 투자를 결정하고 이미 입주한 기업들이 100여 개 사 이상 있고 이외에도 해룡산단, 세풍산단, 황금산단, 광양항 배후지 등 여러 산업단지 내에 입주한 기업들이 많이 있는데, 이 중에는 MOU를 체결하고 들어온 기업도 있지만, 바로 분양계약을 하고 입주한 기업도 상당수이다. 말하자면 그때그때 상호 필요에 따라 협약을 체결하며, 또 투자협약을 체결했다고 해서 100% 투자실현이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E사는 우리와 투자협약을 체결할 때 인조목 생산과 인조목 제품을 생산하는 기계 설비를 제작하겠다는 사업 계획서를 제출했었다. 국내외 공급계약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평가받아 협약을 체결하였으나 공장설립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공장부지에 대한 분양계약을 못하고 시간이 흘러서 투자협약에 대한 효력이 상실된 상황이 된 것이다.
산업단지의 분양과 투자협약은 관리주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투자협약 체결의 조건으로 공장부지를 우선 확보하였을 경우에 한하여 추진하는 경우도 있지만, 통상적으로 협약을 체결하고 1년 혹은 2년 정도 유예기간을 두고 그 기간 동안 분양계약에 이르지 못하면 우선협상 대상에서 자동으로 취소되는데, 이 점은 협약서에도 명기한다.
그런데 E사의 조 사장은 고소인에게 율촌 1 산단 내에 공장 부지를 확보하였고, 곧 공장 건립을 착수할 예정이라며 이 공사를 맡기겠다는 조건으로 운영자금 명목으로 몇천만 원을 받아쓰고 잠적해 버리는 바람에 자금을 제공한 피해자가 고소하였던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났지만,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예전에도 옆 부서에 비슷한 문제로 경기도 A경찰서에서 고소 건이 접수되었다며 확인 전화가 들어온 적이 있다.
담당자에 따르면, 고소 내용은 H사 대표가 율촌산단에 조선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현장 공사를 할 때 식당 운영권을 주겠다며 소위 '함바식당' 운영을 희망하는 사람으로부터 권리금을 미리 받았으나 실제로 사업 진행이 안되고 시간이 흘러도 진척이 없자, 이 운영권이 제삼자에게 넘어가는 과정에 권리금만 더욱 부풀어져 최종 피해자가 억대 피해를 보게 되자 고소를 제기한 억울한 사연이었다.
함바 はんば(飯場)
일제시대에 들어온 말로 토목, 건설현장에서는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듯.. 원래 "토목 공사장, 광산 현장에 있는 노무자 합숙소"인데, 한국에서는 가건물로 지어 놓은
<공사 현장 식당>을 가리키는 말로 쓰고 있다.
사실 그 일이 일어나기 1~2년 전에 H사 대표가 미국계 자금 유치를 통하여 조선소를 건립할 계획이니 투자협약을 체결해 달라고 찾아왔었다. 그러나 사업계획이나 자금조달 계획 등이 너무 허술하여 내부 검토 후 협약 체결을 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찾아와서 투자협약 체결을 요청하였지만, 해줄 수 없다는 결론을 짓고 일단락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A경찰서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H사가 우리 측과 마치 투자협약을 맺은 것처럼 서류를 만들고 대표자 간 체결 사인을 한 것처럼 꾸며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그것을 악용하였던 모양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황당한 일이고 세상에는 몹쓸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확인할 때마다 쓰디쓴 입맛을 다시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