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지점으로 발령받고 10년 이상 연차의 최고참 매니저님과 단독 근무를 하게 된 첫날이었다.
가장 연차 높으신 매니저님이셨지만 타지점과의 회식자리에서 여러 번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무섭거나 긴장되진 않았다.
오히려 회식자리에서는 밝고 쿨한 성격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갔기에 좋게 봤다는 게 사실이다.
그 날 단 둘이 근무를 이어나가던 중 그 선임 매니저님이 문득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매니저님은 다른 데로 이직하고 싶은 마음 없어요?"
우리가 같이 근무를 하는 첫날이었고 너무나도 솔직하고 개인적인 질문이라 나는 단지,
나에 대한 관심으로만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는 너무나도 솔직하게
"음~ 그런 마음이 있기도 한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했고
"만약에 매니저님이 이직을 한다면 무슨 이유 때문 일거 같아요?"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나에 대한 질문에 신이 나서
"저는 사실 매일 똑같이 돌아가는 업무보다는 좀 창의적이고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 이직을 하게 된다면 다른 업종으로 가보고 싶어요. 마케팅 같은 거요!"라며 나 또한 선임 매니저님께 똑같은 질문을 드렸다.
이 모든 게 서로를 알아가고 친해져 보려는 과정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대화의 끝에
"아니 사실 내가 이걸 왜 물어봤냐면, 이직 생각하고 있는 애들은 일을 열심히 안 하더라고."
라는 말이 돌아와 내 뒤통수를 때렸다.
'아니 날 얼마나 봤다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지? 내가 일을 열심히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설령 조바심에 말씀하셨다 해도 어느 정도 지켜본 뒤에 말하는 것이 예의 아닌가.
아니면 차라리 처음부터 일 열심히 하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시던가 이렇게 뒤통수치는 화법을 사용하시다니'
내 뒤통수는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을 했고 할 말은 해야 하는 내 성격 상
"매니저님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될 거 같아요. 제가 이직한다 하더라도 지금 맡은 일은 열심히 하는 게 당연한 거고, 만약 열심히 안 하면 그건 시간 버리는 거라 생각해 어떻게든 배우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내 이런 말에 다른 지점에 있는 누가 이직하려 하는데 일을 안 하더라고 황급히 말을 돌리셨고
그날 난 하루 종일 찝찝했다.
어느 지점을 가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과 열심히 노는 사람은 있고
그 구분이 이직여부로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같은 지점 후임에게 들려줬더니
"그 매니저님 질문은 한번 돌려서 생각해야 해요."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후배 매니저가 입사하고 얼마 뒤 선임 매니저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셨단다.
"매니저님 00 이벤트가 언제까지죠?"
질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후배가
"0월 0일까지 입니다!"라고 답했고
곧이어 돌아온 대답은
"매니저님, 그걸 내가 몰라서 물었겠어요? 이벤트가 시작되면 공지하고 준비하고 다 해놔야 된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였다고 한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이런 화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우린 언제나 질문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질문을 매번 비켜갈 수도 없다.
다만 이 경험으로 내가 알게 된 것은 내게 던진 질문에 의도가 다분할 때,
단지 '아 그렇습니까. 당신의 화법은 그러하군요. 그런 뜻이었군요.'
라며 '당신은 그런 사람'으로 인정해버리는 것이 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이런 상황은 언제든지 찾아온다.
상처받고 곱씹고 후회하지 말고 때때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연습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