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중에서
작년 4월, 전임자가 퇴사한 후 회사의 유일한 UX/UI 디자이너가 되었다. 새로운 UX/UI 디자이너를 채용해야 하는데 경험이 부족한 내가 혼자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PM으로 전환하신 팀장님과 함께 채용을 진행하게 되었다. 지원자를 검토하고 면접에 참석하기 시작한 지 약 1년 5개월이 지났다. 이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채용 과정은 일반적인 회사들과 비슷하다. 서류 검토에서 입사까지 모든 과정은 약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소요된다.
서류 검토 → 1차 인터뷰(실무자) → 2차 인터뷰(임원) → 처우 협의 → 최종 합격
요즘 다른 기업들의 채용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디자이너도 과제 전형을 하는 곳이 많아졌다. 개발자 채용에서 코딩 테스트가 기본이 된 것처럼 디자이너도 과제 전형이 기본으로 되어가는 것 같다. 제한된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보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에는 깊이 공감한다. 주로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회사들에서 많이 하는데 결과와 상관없이 과제 전형을 진행한 지원자에게 과제비를 지급하는 곳도 있고, 지급하지 않는 곳도 있다. 지급하지 않는 회사는, 특히 규모가 큰 회사인 경우에는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것을 종종 보았다. 보통 과제 전형은 3~5일 동안 진행하기 때문에 2~4시간 동안 진행되는 코딩 테스트보다 부담이 더 큰 편이라 그런 것 같다. 아무튼, 우리 회사는 아직 과제 전형을 진행하기에 지원자와 면접관 모두 부담이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프로세스로 진행하고 있다.
지원서가 접수되면 인사담당자분이 채용 스프레드시트를 업데이트한 후 알려주시고, 팀장님과 함께 일주일 내로 지원자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검토하고 결과를 전달한다. 지원자의 서류를 검토할 때는 포트폴리오를 먼저 살펴본다. 많은 지원자를 제한된 시간 안에 검토해야 하므로 기본적인 UI 설계 능력과 문제 해결 역량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지원자만 이력서를 추가로 보는 편이다. 이 과정에서 느낀 것은 다음과 같다.
1. 생각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디자이너가 많다.
이건 우리 입장에서 좋은 현상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디자이너가 들어왔을 때 여러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더 나은 해결방안을 도출하며 서로 배울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심리학, 영문학, 의류 디자인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지원자부터 영국, 미국 등 외국이나 항공사에서 일을 하다가 코로나의 여파로 한국에 들어와 지원한 분들도 있었다.
2. 디자인 근거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지원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디자인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상대를 설득시키는 능력이 필요하다. 물론 설득은 항상 쉽지 않은 과정이다. 나도 여전히 디자인을 설명할 때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할 때가 많아서 디자인을 하는 모든 순간에 'Why'를 고민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런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아쉬운 지원자가 많았다. 컬러를 선정한 이유, 디자인 컨셉을 그렇게 설정한 이유, 디자인 패턴을 사용한 근거 등을 물었을 때 대답하지 못하거나 급조해서 답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본인 나름의 디자인 근거를 이야기하는 지원자도 있었는데 깊이 고민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에 이런 분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인상으로 남는다.
포트폴리오를 검토하여 역량이 충분하고 우리가 찾는 인재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팀장님과 의논하여 면접 제의 여부를 결정한다. 지원자에 대한 의견은 대부분 비슷한 편이다. 지원자 검토 결과를 인사담당자분에게 전달하면 인사담당자분이 면접 제의를 하고 지원자가 수락하면 일정을 잡는다. 여기까지 빠르면 1주에서 2주 정도 소요된다. 이 단계에서는 두 가지 고민이 있다.
1. 다른 곳에 가게 되었다며 면접 제의를 거절할 때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회사 규모가 더 크거나, 인지도가 더 높거나, 지원자 기준에서 더 가고 싶은 곳에 합격해서 면접 제의를 거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붙잡을 방도가 없다. 이럴 때는 우리 회사의 디자인을 더 발전시켜서 누구나 와서 일하고 싶도록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이 든다. 최근에 '데이빗beta'님의 글을 읽었는데 내용이 인상 깊고 공감되었다.
1. 좋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직접 발로 뛰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객(지원자)이 알아서 지원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문화를 블로그 등으로 외부에 알리거나 사내 추천 제도를 통해 직원들이 스스로 다른 사람을 영입해오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제로 좋은 문화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2. 매력적인 제품을 만든다.
어떤 회사의 제품 특성상 디자인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니더라도 디자인을 최고의 수준으로 높여두면 그것 자체로 인재를 불러들이게 된다. 지원자는 저곳에서 디자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더 좋은 인재를 확보하고 그들이 알아서 더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게 하고 싶다면 제품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채용 방법이다.
2. 면접을 제의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
지원 서류를 검토하면서 자주 하는 고민이다. 한창 이직을 준비할 때 나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본 여러 회사의 디자이너분들도 이런 고민을 했겠구나 싶다. 자기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아래 두 가지 경우에 많은 고민을 한다.
1) 비주얼 능력은 좋으나 논리적인 문제 해결 능력이 잘 보이지 않을 때
UX/UI 디자이너를 뽑을 때는 문제 해결 능력을 1순위로 보기 때문에 그래픽 디자이너로 지원하셨으면 오히려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래픽 디자인도 문제 해결 능력이 중요하다.) 이런 분들 중에는 브랜딩이나 그래픽 디자인을 하다가 UX/UI 분야로 전환하려는 분들이 많았다. 그래픽 디자이너도 함께 채용하고 있는데 지원자가 적어 늘 아쉬운 부분이다.
2) 논리적인 문제 해결 능력은 좋으나 비주얼 능력이 부족할 때
위의 경우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다. 우리가 찾는 인재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디자인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UI 구성 능력은 기본만 안다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런 분들 중에는 1차 면접에 합격했으나 아쉽게도 2차 면접을 거절하고 다른 곳으로 가신 분도 있다. 반대로 1차 면접 후 불합격을 드린 분도 있었는데 그분은 논리적인 구조 설계에는 강점이 있었지만 비주얼 역량이 많이 부족했고 기획자 포지션에 더 가깝다고 판단하여 긴 고민 끝에 불합격을 드리게 되었다.
여러 명의 제너럴리스트보다 각자 다른 확실한 강점을 가진 인재가 모이는 것이 시너지를 내고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기에 다양한 강점과 배경을 가진 지원자를 모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작년 가을까지 대면 면접을 했으나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현재까지 화상 면접을 하고 있다. 화상 면접이 편리한 점도 있지만 지원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느낄 수 있는 생동감은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아쉽다.
면접 일정은 최소 일주일 전에 구글 캘린더를 통해 잡힌다. 해당 시간이 되면 연결된 구글 밋 링크로 접속하고 인사를 나누면서 면접이 시작된다. 면접은 보통 1시간에서 길면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다. 미리 준비된 면접 질문지를 바탕으로 질문하고 지원자의 답변을 들으며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 계속 딥하게 질문한다. 이를 통해 얼마나 깊게 고민하며 진지하게 임했는지 알 수 있다. 지원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건 항상 설레는 일이다.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는지, 디자인과 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의 관점도 덩달아 넓어짐을 느낀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지원자를 보면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가끔 우리 회사에 정말 오고 싶어서 지원한 건지 의심되는 지원자도 있다. 면접 연습하려고 지원했나 싶을 정도. 회사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도 알아보지 않고 지원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럴 때면 그 시간이 정말 아깝게 느껴진다. 이런 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회사가 일하고 싶은 회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지원자 검토 과정에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면접이 끝난 직후 기억이 가장 생생할 때 면접 결과지를 작성한다. 합격 여부는 바로 판단이 서는 경우가 많은데 우선은 합격 여부와 관계없이 결정에 대한 근거를 작성한다. 합격인 경우 업무 역량이 얼마나 뛰어나고 어떤 성향을 가졌으며 조직에 잘 녹아들 수 있을지 등을 작성하고, 불합격인 경우에는 불합격 사유와 함께 지원자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는 피드백을 따로 전달한다.
팀장님과 면접 결과지를 작성하면서 최대한 빨리 2차 면접 제의를 하자고 이야기하는, 정말 괜찮다고 생각되는 지원자는 면접 후 다른 회사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아쉽지만 우리 회사가 그만큼 탐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 회사와 핏이 맞는 지원자도 분명 있겠지만 외부에서 바라볼 때 가고 싶은 회사가 되기 위해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좋은 문화를 알려야겠다는 다짐만 여러 번 했다.
채용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직을 준비하는 지원자도 마찬가지로 많은 시간을 투자할 것이다. 내가 언젠가 이직을 하게 된다면 조금 더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한 후에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의 시간이 소중한 만큼 찔러보기식의 지원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원자가 좋은 회사를 찾고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준비한 만큼 회사도 좋은 지원자를 찾고 모셔오기 위해 더 좋은 회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갑과 을의 위치로 봐서는 안되며 면접관이든 면접자든 늘 겸손해야 한다.
이것으로 1년 5개월 동안 채용을 하며 배운 것에 대한 글을 마친다. 채용을 처음 시작하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