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를 인격적으로 키우기란 쉽지 않지만 ‘다운천사’는 인내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 단단하게 무장하지 않으면 하루에도 수십 번 좌절할 수 있다. 차가 지나가는 건널목 앞에서 숨을 깊게 내쉬며 딸의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오른쪽으로 딸의 얼굴을 돌리며 “차 와?” 왼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차 와? 차 보이지? 그러면 멈춰 서 야해” 차가 지난 후 에는 “다시 봐봐 차 지나갔어? 차가 없으면 건너는 거야”라며 손을 잡고 이끌었다.
두 아들을 키울 때는 계단 내려가기가 어려운지 몰랐다. 오른발 왼발 번갈아 움직이는 게 당연했다. ‘다운천사’ 딸에게는 힘들었다. 딸은 한 계단에 한 발 내딛고 다른 발이 따라 내디디며 천천히 내려갔다. 번갈아 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딸의 손을 잡고 오른발, 왼발을 외쳤다. 계단 오를 때에도 마찬가지로 오른발, 왼발을 외쳤다. 무한 반복으로 듣던 엄마의 외침에 제법 잘 오르고 내려오게 됐다. 신발을 짝짝이로 신는 딸을 위해 신발 안쪽에 매직으로 하트 모양 반 개씩 그렸다. 하트 모양을 보고 올바로 신는 법을 배웠다. 스스로 옷을 입게 되면서 앞을 엇갈려하는 딸을 위해 앞에 그림이 있는 티셔츠만 샀다. 그림을 보고 앞을 구별했다.
친화력이 좋은 딸은 지나가는 사람 누구에게나 인사했다.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에게나 손 흔들 면 안돼!! 꼭 네가 아는 사람하고만 인사해”라며 길을 걸을 때면 딸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여전히 지나가는 사람에게 인사하지만 전보다는 덜 했다. 식당에서 자리 이탈하는 딸에게 “예쁘게 앉아서 먹는 거야. 두 오빠도 잘 앉아있지? 밥 다 먹으면 엄마가 데리고 나가 줄 거야 “ 라며 의자를 끌어다 내 옆에 딱 밀착해서 앉혔다. 엉덩이를 ‘들썩들썩’ 했지만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장을 보러 슈퍼마켓에 갈 때면 카드 안에 딸을 태웠다. 식빵을 집어 딸에게 전했다. 한국말인 ‘빵’과 독일어인 ‘Brot’(브로트)를 여러 번 반복해서 알려줬다. 오이, 토마토. 딸기, 계란 등 다양한 식재료는 재미난 단어 놀이가 됐다. 딸은 어눌한 발음이지만 조금씩 따라 했다. 여러 번 슈퍼마켓을 다녔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이 원하는 걸 표현한 적이 없었다. 그저 엄마가 전해 주는 식재료를 카트에 담을 뿐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딸을 학교서 데리고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냉동고 문을 열고 얼은 새우를 찾고 있는데 딸이 “엄마, 엄마”를 불렀다. 작은 손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가리켰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라는 내 물음에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원하는 걸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었는데. 눈시울이 뜨거웠다.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보이는 아이스크림을 집어 들었다. 딸은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고는 독일어로 감사하다 Danke(단케)를 말했다. 만 1세에 보이는 상호작용을 다운천사 딸은 만 7세에 이뤄냈다.
그날 이후 날씨 좋은 날이면 문을 가리키며 “나가자”라며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어느 날에는 작은 머릿속에 수영장 갔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독일어로 수영
Schwimm(수뷤)을 말했다. 딸에게 반복적인 단어를 말하며 지칠 때도 있었다. 딸이 말을 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에 눈물을 쏟아냈던 날도 많았다. 차근차근 지나온 시간 속에 딸은 천천히 성장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인고의 시간은 계속되겠지만 딸이 보여준 감동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지치는 시간이 단축되겠지? 슬픔을 눈물로 쏟아내는 것보다 웃는 날이
많겠지? 두려움보다는 밝은 미래를 그려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