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좋은 아침이야”라며 딸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부분 독일 사람들이 한국 이름을 부를 때 악센트를 넣어서 어색하게 부르는데. 정확한 발음으로 딸의 이름을 부르니 신기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선생님은 활짝 웃으며 말을 건다. “좋은 아침이에요. 00가 다니던 유치원에 카리나 선생님 알죠?” 모를 수가 없었
다. 딸을 사랑으로 아껴주며 보살펴 주던 선생님이었으니 기억난다.
선생님은 딸이 유치원을 떠나기 며칠 전부터 눈물로 이별을 준비했다. 손수 준비한 선물을 딸의 품에 안겨 보내기까지 했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커진 눈으로
“카리나 선생님을 어떻게 아세요?”라며 물었다. “제 딸이에요.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사랑스러운 00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어요.”라며 웃는 모습 속에 카리나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카리나 선생님 엄마를 이렇게 만나다니. 카리나 선생님이 자신의 엄마가 학교에 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아서 더 놀랐다.
2주 전 딸의 학교가 쉬는 날이 있었다. 유치원 선생님 중 유일하게 연락하는 라우라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들 몰래 딸을 유치원으로 초대했다. 딸을 차에 태우고
“오늘은 라우라 선생님, 카리나 선생님, 이치아 선생님을 만날 거야. 선생님들이 00을 많이 그리워 한데. 오늘은 유치원에 가서 3시간 놀다 올 거야.”라는 말에 딸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곧 익숙한 길에 들어서자마자 딸은 환호했다. 차에서 내려 빨리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며 엄마를 불렀다. 마침 학부형이 문을 열고 나왔다. 우린 인터폰을 누르지 않고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선생님들은 우리가 들어온 줄 알지 못했다.
좋은 기억으로 가득한 곳으로 딸은 순식간에 뛰어 들어갔다. 선생님들은 깜짝 놀라며 벌어진 입을 손으로 막았다. 이미 나와 이야기가 됐던 라우라 선생님만이 놀라지 않았다. 카리나 선생님은 딸을 보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두 팔 벌려 딸을 맞아주었다. 거의 1년 만의 재회였다. 딸은 선생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카리나 선생님은 딸의 온기를 한 톨도 버리지 않으려 더욱더 끌어안았다. 서로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그 모습을 잠잠히 바라보다 조용히 유치원을 빠져나왔다.
나에게 3시간은 빨리 지나갔지만 딸에게는 아쉬운 시간이었을 것 같다. 딸을 데리러 갔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유치원에서 선생님들과 좋은 시간을 보낸 딸의 표정이 반짝였다. 말을 못 하니 자신의 표현도 어려웠을 딸도 속으로 얼마나 그리웠을까. 카리나 선생님은 헤어지기 아쉬워 두 손으로 딸의 작은 손을 꼭 잡았다
. “오늘 00을 만나서 행복했고, 오늘을 기억할 거야 다음에도 꼭 놀러 와”라며 천천히 손을 놓아주었다.
그렇게 선생님을 만난 게 불과 2주 전이었는데 선생님의 엄마를 학교에서 만나다니. 그동안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며 숱하게 마주쳤을 텐데. 이제야 알았을까? 딸을 데리고 헐레벌떡 뛰어다니는 모습이 떠올라 창피했다. 카리나 선생님 엄마라고 알게 된 이후로 우린 자주 마주쳤다. 딸은 카리나 선생님을 안아주듯 이제는 카리나 선생님을 닮은 안나 선생님을 꼭 안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