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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안경 맞추면 2주 걸린다.

by 베존더스


뭐든 느린 나라 독일. 집 짓기는 1년 넘게 걸리고, 비자 신청해서 받기까지는 6개월 걸린다. 바로 가구를 살 수 있는 이케아에서 조차 소파를 사고 배달해서 받기까지 1주일이 걸린다. 안과 예약은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독일에서는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안과, 치과 진료를 받게 되어있다. 1년이 넘어서면 보험회사에서 진료 날짜가 지났다는 알림 편지가 온다. 꾸준히 진료를 받다가 치료할 일이 생기면 보험회사 혜택을 받는다. 2년에 한 번 또는 3년에 한 번 진료를 받다가 치료할 일이 생기면 100프로 본인 부담이다.


삼 남매 역시 1년에 한 번 안과에 간다. 이미 첫째 듬직이는 안경을 쓴 지 3년이 되었다. 둘째 테디베어는 시력이 좋지 않은 경계선에서 안경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지켜보는 상태였다. 셋째 ‘다운천사’는 시력 측정이 어려웠다. 말을 못 하니 잘 보이는지 안 보이는 알 수 없었다. 기계에 얼굴을 대고 측정하기 또한 쉽지 않았다. 기계에 얼굴을 대고 한 곳을 집중해서 봐야 하는데 눈을 깜빡이고 눈을 굴리기 바빴다. 요즘 잘 보이지 않은 지 부쩍 인상을 찌푸리는 ‘다운천사’가 걱정되었다.


6개월 기다려 안과에 갔다. 첫째 듬직이 순으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삼 남매의 모든 진료가 끝나고 의사 선생님은 “첫째 00은 작년과 시력이 똑같아요. 1년에 한 번 오면 될 것 같아요. 둘째 00은 일상생활에서는 괜찮지만 공부할 때에는 안경을 껴야 해요. 셋째 00도 이번 검사에서 시력이 안 좋게 나왔어요. 우선 안경을 껴서 지켜보며 관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6개월 후에 다시 오세요.”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깊은 한숨이 나왔다. 엄마인 나 역시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안경을 꼈다. 나 때문에 삼 남매 모두 안경을 쓰게 된 건 아닌지 자책했다. 40대 후반이어도 시력 좋은 남편을 좀 닮지.


시력 검사 소견서를 들고 안경원에 갔다. 둘째 테디베어는 마음에 드는 안경테를 찾기 위해 시간을 끌며 까다롭게 굴었다. 나는 최대한 싼 안경테를 권했지만 멋쟁이 둘째 테디베어의 성에는 차지 않았다. 고심 끝에 고른 안경테의 가격을 보는 순간 조용히 속삭였다.

“00야, 이렇게까지 좋은 테를 네가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다른 테를 더 보면 어떨까?” 둘째 테디베어는 입술을 쭉 빼고는 못마땅해했다. 실랑이 끝에 겨우 찾아낸 안경테로 정했다. 셋째 ‘다운천사’ 차례였다. 한눈에 훅 둘러봐도 만 7살이지만 얼굴이 아기처럼 작은 ‘다운천사’에게 맞는 게 없어 보였다. 점원은 이것저것 우리에게 권하며 ‘다운천사’ 얼굴에 씌었지만 모두 커서 흘러내렸다. 콧대도 납작하니 더 어려웠다. 점원은 구석진 곳에서 아기 안경테를 꺼내 보여줬다. 얼른 받아서 씌었더니 꼭 맞았다. 바로 결정했다.


안경 두 개는 주문에 들어갔고 2주 후에 받았다. 한국이라면 그날 그 자리에서 되었을 텐데 오래 기다려 받았다. 처음 써보는 안경이 불편하고 낯선 ‘다운천사’는 썼다 벗었다를 반복했다. 제대로 안경을 쓰지 않는 바람에 귀에 딱 맞는지 조절만 20분 걸렸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도 썼다 벗었다를 반복했다. 앞으로 잘 쓸 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었다. 학교 가서 버리고나 오지 않기를. 선생님에게 연락했다. “00는 내일부터 학교에 안경을 끼고 가요. 안경을 잘 쓸 수 있도록 신경 써 주세요.” “네,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만 제 경험상 쉽지 않을 수도 있어요. 벌써 여러 번 찾아본 경험이 있거든요. 행여 찾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라는 선생님 말을 백번 이해했다. 안경원에서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운천사’ 딸 안경 찾기를 했었다. 매일 보물 찾기를 하게 되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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