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학교는 계절마다 방학이 있다. 4월 부활절 방학, 7월 여름방학, 10월 가을방학 그리고 12월 크리스마스 방학이 있다. 학교 다니는 삼 남매에게 자주 찾아오는 방학은 쉬어가는 쉼터다. 엄마인 나에게도 아이들 라이딩하며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의 쉼표다. 2주씩 짧은 방학이지만 여름방학만큼은 긴 6주다. 올해는 이사하고, 시부모님 방문으로 일이 많았던 만큼 유독 길게 느껴졌다. 며칠 전 삼 남매는 개학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한 학년씩 올라갔다. 둘째 테디베어는 4학년 입시생이 되었다. 인문계로 갈지 종합 학교로 갈지 4학년에 결정된다. 종합 학교는 인문계, 상고가 합쳐져 있어서 10학년이 되었을 때 대학으로 진학할지 전문 직업 훈련을 받을지 결정한다.
만 9살 이른 나이에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부담감의 무게는 무겁다. 중요한 시기를 보내야 하는 만큼 엄마인 나도 바짝 긴장한다. 이미 첫째 듬직이 때 경험이 있었지만 외국인 엄마는 여전히 처음 하는 것 같이 어렵다. 엄마인 내가 모국어만큼 독일어를 잘하면 뭐가 걱정이겠는가. 독일엄마들이 하듯 뭐든 안 해주겠는가. 애석하게도 독일어를 잘하지 못한다. 한국인 가정에서 자라나는 삼 남매는 언어적으로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외국인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독일어 과외 선생님을 찾아주는 것, 독일 친구들과 놀 수 있는 환경을 자주 만들어 주는 것뿐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학부모 회의 참여, 학교 행사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나 또한 그곳에서 외국인이다.
첫째 듬직이를 시작으로 새 학기만 8년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떨린다. 삼 남매 모두 학교에 다니니 학부모 회의도 세 번 가야 한다. 삼 남매는 학교도 다르고 학년도 다르다. 학부모 회의로 가는 곳마다 집중해서 귀를 쫑긋 세워야 한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받아 적느라 바쁘다. 행여 놓칠세라 핸드폰 녹음기까지 켜둔다. 첫째 듬직이는 종합학교 8학년이 되었으니 앞으로 2년이 중요하다. 올해 학부모 회의 내용은 남은 2년에 관한 게 될 것 같다. 10학년에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첫째 듬직이는 아직 명확한 꿈이 없어 심히 걱정된다. 이것저것 찾아줘 보지만 영 관심이 없다. 남편과 난 첫째 듬직이 나이에 이미 진로를 선택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기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둘째 듬직이 학급의 엄마들은 유난이다. 전학 온 아이의 학부모가 들어가기 어렵게 팀워크가 견고하다. 나 또한 그들에게 들어가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었다. 상냥하게 인사를 건넸고, 학교 행사에 학급이 맡은 게 있으면 적극 참여해 도왔다. 그러한 노력에도 여전히 나를 불편해하는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둘째 학교에 가기 싫은 이유가 가장 크다. 안건도 얼마나 많은지 듣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 올해는 입시생 4학년이니 안건은 배나 더 많을 것이다. 아직 학부모 회의 날짜도 잡히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깊은 한숨이 나온다. 진심 남편이 나 대신 가줬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다운천사 특수학교는 한 반에 10명이라 단란하다. 특수학교 선생님들은 언제나 상냥하고 친절하다. 이곳에서는 외국인 엄마라는 특징은 문제 되지 않는다.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에 마음이 편해진다. 한 반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같이 있어 올해 학부모 회의 때에는 1학년 신입생 부모를 만날 것 같다. 작년에 난 아무것도 모르는 1학년 학부모로 참여했었는데 이젠 뭘 좀 아는 2학년 학부모가 되었다. 그럼에도 독일어로 하는 학부모 회의는 여전히 부담된다. 어서 빨리 삼 남매 학부모 회의가 지나가길. 중요한 시험을 앞둔 기분이라 너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