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년 만에 독일 수영장에서 또 만날 확률은?

by 베존더스

친정엄마가 차려준 밥에는 힘이 있다. 시부모님 모시며 지쳤던 마음에 뭉글뭉글 힘이 솟았다. 친정 아빠는 다 먹은 그릇조차 싱크대에 가져다 두는 걸 못하게 했다. 엄마를 도우려 부엌을 기웃거리면 나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삼 남매 키우며 애쓰는 딸이 친정 집에서 만큼은 편하길 바랐다. 손주들도 사랑스럽지만 언제나 내가 우선이었다. 딸이 밥을 편히 먹을 수 있게 손주들을 살펴주었다. 친정은 외국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안식처다.


외갓집에 오면 삼 남매가 가고 싶어 하는 해수 파도 풀장이 있다. 2년 전 처음으로 갔었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운전하는 남편은 “파도 풀장을 2년 만에 가니 옛 생각이 나네 딸이 모르는 독일 아이와 재미있게 놀았었는데.” “맞아, 또렷이 기억나.”라며 추억을 회상했다. 독일에 파도 풀장이 흔치 않았지만 해수라는 특이 사항으로 인기가 많았다. 독일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가족 단위로 북적였다. 그 많은 인파 속에서 120센티미터도 안 되는 작은 체구의 다운천사는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다. 탈의실에라도 온전히 들어가 주었으면. 나의 작은 바람은 산산이 흩어졌다. 결국 안아 올려서 탈의실로 들어갔다. 빨리 수영장에 들어가고 싶어 들썩거리는 다운천사를 붙들고 수영복으로 갈아입혔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먼저 나와 있는 남편 손에 딸을 들려 보냈다.


캐비닛에 짐을 넣고 샤워실을 거쳐 수영장으로 나갔다. 많은 인파로 지나다가 몸이 부딪히기도 했다. 저 멀리서도 검은색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동양인은 우리 가족뿐이라 흩어져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야심 차게 수영장에 들어간 다운천사는 몇 분 되지 않아 눈물범벅이 되었다. 큰 파도가 덮쳐 해수 풀장의 짠물을 듬뿍 먹으며 눈과 코가 빨개졌다. 계속 우는 딸을 안고 파도가 출렁이는 풀장을 빠져나왔다. 파도가 그치면 딸은 튜브를 끼고 슬금슬금 들어갔다. 파도가 치면 혼비백산이 돼서 나오길 반복했다. 파도가 없는 풀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동하는 통로에서 누군가 눈이 마주치고는 팔에 소름이 쫙 돋았다. 2년 전 딸과 함께 재미있게 놀았던 독일 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지나갔다. 2년 만에 다시 만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남편에게 달려가 “여보, 2년 전 딸과 함께 놀던 독일 아이가 방금 전에 스쳐 지나갔어.”라는 내 말에 남편 눈이 커졌다.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처음 와본 해수 풀장이었기에 그 아이를 또렷이 기억했다. 처음 만났을 때 독일 아이는 아기 풀장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친화력 좋은 다운천사 딸은 그 독일 아이에게 다가갔었다. 까르륵 웃으며 재미있게 놀았었기에 헤어질 때 울고불고 난리였었다. 그 독일 아이는 우리를 기억할까?


2년 전처럼 딸을 데리고 아기 풀장으로 가봤다. 아까는 스쳐 지나갔지만 다시 만나길 바라며 기다렸다. 놀랍게도 그 독일 아이는 아빠 손을 잡고 아기 풀장으로 들어왔다. 딸과 눈이 마주쳤지만 훌쩍 큰 아이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딸에게 “할로”라고 인사해 봐 라며 등을 떠밀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딸은 엄마의 성화에 마지못해 “할로”라고 인사했다. 인사를 받은 독일 아이는 멀뚱히 서서 우리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딸이 먼저 다가갔다면 함께 놀았을까? 2년 만에 독일 수영장에서 또 만났지만 우리는 그 아이에게 스쳐 지나간 인연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국 할아버지와 독일 손자의 좌충우돌 한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