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집 문에는 도어록이 없다. 집을 나갈 때 대문을 닫으면 잠긴다. 손잡이를 잡고 아무리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는다. 반드시 열쇠가 필요하다. 독일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일이 생각난다. 쓰레기를 버리려 대문을 살짝 열어두고 나갔다. 그사이 바람에 문이 쾅 닫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떨어진 낙엽이 바람에 날리는 가을 맨발에 여름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얇은 티셔츠는 추위를 막아주지 못했다. 학교에 간 동생은 2 시간 후에나 돌아오는 상황이었다. 우체통에서 신문지를 주섬주섬 꺼내 대문 앞 계단에 깔고 웅크리고 앉아 동생을 기다렸다. 그 이후로는 열쇠를 손에 쥐고 문을 닫는 습관이 생겼다.
한 번은 집열쇠 뭉치를 길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적이 있다. 누군가 주워 열고 들어 올 수 있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대문을 바꾸게 되어있다. 다행히 찾아서 큰돈 들여 대문을 바꾸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외출하면 열쇠가 잘 있는지 여러 번 확인했다. 새집으로 들어오면서 임시로 받은 열쇠는 2개였다. 2개 중 하나를 딸이 꽁꽁 숨겨 찾지 못하는 중이다. 얼마나 잘 숨겨놨는지 보물 찾기였다. 열쇠가 1개였기에 대부분 집에 있는 나보다 늦게 집에 들어오는 남편이 가지고 다녔다. 연말 가족모임을 위해 다섯 명이 나란히 집을 나섰다. 일 년에 두 번 보는 남편 사촌형네를 몇 달 만에 만나는 기쁨으로 가득했다. 사촌형 부부의 외동딸 역시 우리 집 삼 남매를 손꼽아 기다렸다.
1시간 거리 이동을 위해서 주유소에 들렀다. 남편은 잠바를 뒤적거리며 당황한 눈빛으로 “열쇠 챙겼어?”라는데 내 귀를 의심했다. “어엇! 뭐라고? 오빠가 항상 챙겼었잖아?” 열쇠는 우리에게 없었다. 4시간 거리에서 오는 사촌형네와 약속을 취소는 무리였다. 이동하는 차 안의 공기가 무거웠다. 누구라도 입을 열면 서로 원망할 것 같았다. 정적이 흐르던 차 안에서 남편이 입을 열었다. “열쇠공을 불러보자 주말이라 두 배나 비싸겠지만 방법은 그것뿐이야.”라며 아는 열쇠공인 지인에게 연락했다. 모임 후 늦은 오후가 될 것 같다는 우리의 말에 열쇠공 지인은 괜찮다며 집에 오거든 연락하라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사촌형네를 만나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열쇠공도 문을 못 열면 어쩌지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점심 식사 내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체할 것 같았다. 모임 시간을 짧게 마무리하고 집으로 갔다. 지인인 열쇠공이 와 주었다. 이 방법 저 방법을 해봤지만 열리지 않았다. 요즘 새로운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문의 두께는 남자 어른 팔뚝보다 두꺼웠다. 문을 닫으면 자동으로 위, 아래 두 번 잠기는 시스템이라 열기가 어려웠다. 방법은 문을 부스는 것뿐이라며 열쇠공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부술 수 없었다. 문값만 몇백만 원이었다. 열쇠공은 돌아갔다.
영하의 날씨가 걱정이었다. 차로 15분 거리에 사는 남동생에게 연락했다. 하룻밤 신세 지기로 했다. 첫째 듬직이는 집에 못 들어간다며 불만이 가득했고 둘째 테디베어와 셋째 딸은 마냥 신났다. 건축회사에서 아직 받지 못한 열쇠 2개가 생각났다. 월요일까지 두밤을 지내야 했다. 오늘은 동생네서 잔다지만 내일은 어쩌지? 남편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오페라 극장에서 일하는 남편은 오페라 극장에 게스트 가수가 오면 머무는 숙소가 있다며 오페라 극장 사무실에 연락했다. 게스트가 없다며 흔쾌히 와서 머물라고 했다. 꼬질꼬질한 행색에 우리 다섯 명은 숙소로 향했다. 영하의 날씨인데 난방마저 망가진 숙소에서 서로의 체온을 맞대며 하루를 지냈다. 날이 밝아 건축회사로 향했다. 연말이라 휴가를 갔는지 건물 전체가 깜깜했다. 회사에 전화해도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갈 뿐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며칠 비워둔 집이 걱정되어 둘러보자라는 생각으로 집으로 갔다. 첫째 듬직이가 혼자 쓰는 3층 화장실에 문을 열어두고 왔다고 말은 했지만 소방차 사다리가 아니고서는 들어갈 수 없었다. 밝은 오전에 보니 활짝 열린 3충 화장실이 잘 보였다. 옆집에 사는 이장님 댁에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니 기다란 사다리를 들고 왔다. 한 층이 모자랐다. 고민하던 이장님은 공사 현장에서 건물 겉에 설치하는 철판을 우리 집 벽에 이어주었다. 성인 남자가 올라가기에는 금방 무너질 것 같아 첫째 듬직이가 올라가 창문 안으로 들어갔다. 2박 3일 만에 대문이 열렸다.
이장님은 이 동네에 오랜 산 터주대감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소방관도 안다며 미리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냐며 여러 방법이 있었는데 아이들 고생했다며 안쓰러워 했다. 앞으로도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연락하라며 신신당부했다. 좋은 이웃이 있음에 감사했다. 몇 번이나 감사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제대로 씻지 못한 아이들은 따뜻한 물을 콸콸 틀고 씻었다. 깨끗해진 아이들 얼굴에 빛이 났다.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을 실감했던 2박 3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