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깁스를 하다.

by 베존더스

삼 남매를 데리고 수영장, 스키장은 여러 번 다녔어도 스케이트장은 처음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아이스하키를 배웠던 남편만 유일하게 스케이트를 탈 수 있었다. 워낙에 운동신경이 없던 나는 빙판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신발을 벗어 사물함에 넣었다. 운동화 끈 보다도 긴 스케이트화 줄과 실랑이를 벌였다. 남편은 삼 남매 스케이트화를 척척 신겨주더니 마지막으로 내 스케이트화도 신겨주었다. 스케이트장까지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의자에서 도저히 일어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슬아슬 외줄 타기 하듯 중심을 잡으며 실내 스케이트장 안으로 들어섰다. 빙판 위는 생각보다 더 무서웠다. 옆을 잡아가며 가까스로 서 있어 봤지만 다리가 떨려서 밖으로 나왔다. 첫째 듬직이는 인라인을 타서인지 중심을 제법 잘 잡더니 조금씩 앞을 향해 나갔다. 둘째 테디베어는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는 중심잡기에 바빴다. 셋째는 있는 힘껏 남편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이러다 두 녀석도 타지 못하고 집에 갈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린아이들이 보조 기구에 양 손잡이를 붙잡고는 밀고 타는 게 보였다.


어디에 가면 빌릴 수 있는지 물어봤다. 신발을 갈아 신으러 사물함까지 거리가 있었다. 벗지도 못한 스케이트화를 신고는 처음 걸음마를 뗀 아이같이 한 발 한 발 내디뎌 실외 스키장으로 향했다. 운동화 신고는 성큼성큼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20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 작은 창고 앞에 보조 기구를 빌려준다는 표지판이 붙어있었다. 바깥에도 눈이 많이 와서 바닥이 미끄러웠다. 등줄기에 땀이 흘릴 정도로 긴장하며 중심을 잡고 서있었다. 미끄러운 바닥을 보자 두려움이 앞서 꽈당 넘어지고 맡았다. 눈으로 쌓인 바닥에 바지는 차갑게 젖었다. 허둥대며 손을 저어 보지만 일어서지 못했다. 마치 거북이가 뒤집어져서 사람의 도움 없이 제자리로 돌릴 수 없는 것처럼. 혼자 애쓰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지나가던 독일 사람이 손을 내밀었다.


초면이었지만 그 손을 덥석 잡았다. 있는 힘 것 나를 일으켜 주더니 괜찮냐며 내 상태를 살폈다. 창피함에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고개를 들지 못 한 채 감사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곳을 피했다. 보조 기구를 지팡이 삶아 디디며 돌아왔다. 남편과 함께 있는 둘째, 셋째에게 전해주고는 의자에 앉아 넘어진 곳을 살폈다. 흠뻑 젖은 바지로 유독 다리가 시렸다. 숨 고르기를 하고는 사물함으로 천천히 걸어가서 신발로 갈아 신었다. 발이 땅에 닿으니 불안한 마음이 사라졌다.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을 멀리서 지켜보며 기다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지친 삼 남매는 집에 가고 싶어 했다. 사물함에 가서 아이들 신발을 미리 꺼내주고 자리를 잡아 앉게 했다. 빌린 스케이트화를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한 후부터 오른쪽 손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넘어진 부분에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거라 여기며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엄지손가락과 연결된 손목의 근육이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아팠다. 엄지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웠다. 겁에 질려 남편을 깨웠다. 주말 아침 단잠에서 깬 남편은 응급실로 나를 데려갔다.


주말 응급실은 북적였다. 접수를 하고 내 이름이 호명되기까지 40분이 걸렸다. 가정 의학과 의사가 나를 불렀다. 찬찬히 살펴보고 눌러보더니 물리치료 의사에게 보내졌다. 의사는 이곳저곳을 눌러보더니 '악' 소리를 지르는 나를 정형외과로 보냈다. 그제야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었다. 엑스레이 결과를 듣기 까지도 오래 걸렸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어서 집에 가고 싶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엑스레이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뼈 부분은 아무 이상이 없지만 계속 아프다고 하니 응급처치로 깁스를 해주었다. 단단한 하얀 석고가 팔을 감싸니 답답했다. 4주 정도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무거운 팔로 4주를 버텨낼 수 있을까? 왼 손으로 해낼 수 있을까?’ 라며 깊은 한숨만 내쉬었는데 어느덧 3주의 시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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