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이지만 이젠 그만 만나자!!

by 베존더스

영상 6도의 날씨. 눈 부신 햇살이 따스하게 몸을 감싼다. 겨우내 얼려져 있던 몸과 마음이 스르륵 녹는다. 오후 4시면 칠흑 같은 어둠이었는데 환하게 해가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딱딱한 땅을 비집고 푸르른 새싹이 인사를 한다. 맑은 새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빼꼼히 봄이 얼굴을 내민다. 나의 알레르기 서막도 서서히 시작된다.


이사하고 처음 맞이하는 봄. 이사한 집 근처에는 하늘에 닿을 것처럼 높다란 나무들로 우거진 산책로가 있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너도밤나무가 줄 서 있다. 풍성한 잎을 만들기 위해 꽃봉오리를 트기 위한 움직임이 빨리 시작됐는지 1월부터 극성이다. 보통은 3월에 시작해서 4월이면 끝났었는데 올해는 1월부터 시작됐으니 4개월을 견뎌야 한다. 가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비비다 보면 빨간 토끼 눈이 된다. 가려움이 가라앉으면 눈물이 고이고 붓는다. 얼음팩을 눈에 대며 가라앉힌다. 한 번 재채기가 시작되면 연달아 10번이 나온다. 재채기를 할 때마다 어깨가 들썩이며 식은땀이 난다. 목이 따갑고 콧물이 줄줄 흐른다. 휴대용 티슈 서른 장이 순식간에 반으로 준다.


알레르기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다. 내성이 생기는지 더 센 약을 먹어야 한다. 코 스프레이를 뿌리면 입안이 쓰다. 음식 맛을 못 느끼 게 된다. 자려고 누우면 막힌 코로 숨쉬기가 어렵다. 입으로 숨을 쉬어야 하니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진다. 잠을 깊게 잘 수 없어서 매일 밤 딱따구리가 내 머리를 때리는 것 같다. 괴로움과 상관없이 아침이 되면 핸드폰의 알람은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나면 콧물이 쭉 흐른다. 휴지를 찾으며 아침을 맞이한다. 아이들을 깨워 학교에 갈 준비를 시킨다. 첫째는 자전거 타고 학교에 가고, 셋째는 스쿨버스가 집 앞으로 온다. 둘째만 데려다주면 되는데 왕복 30분 운전도 버겁다. 운전 내내 재채기만 40번 넘게 한다.


아이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잠옷이 자리 잡는다. 세탁실에 가지고 간다. 세재향이 코를 찌르며 자극한다. 재채기가 쉼 없이 나온다. 평소에는 괜찮은데 유독 알레르기가 시작되면 작은 자극도 세게 들어온다. 시원하게 소낙비라도 내리면 그날은 살만해진다. 매일 비가 오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학교에 자전거 타고 다니는 첫째 듬직이를 생각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해가 쨍쨍한 날에는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열어 물을 콸콸 튼다. 흐르는 물에 얼굴을 댄다. 찬물로 얼얼해진 얼굴이 식어질 때면 가려움이 올라온다. 눈동자는 빨갛고 얼굴은 붓고 코 밑은 헐어 빨개진 모습이 못난이 같다. 생기 있던 일상이 무너지니 무기력하게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하루 일과를 미루는 날이 많아진다. 쌓여 가는 집안일을 한꺼번에 하려면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움직임이 느려진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 또한 지나간다며 위로해 본다. 내년 이맘때 다시 오겠지만 적어도 8개월은 잊고 살 수 있다.


오늘은 해가 눈 부시 게 아름답다. 마음을 단단히 다잡는다. 오늘도 무사히 지나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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