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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존더스 Nov 20. 2021

아이가 나를 키운다.

난 부끄럼도 많고 낯가림도 심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런 성격에 모든 일에 적극적이기보다는 항상 소극적이었다. 그런 내가 클라리넷을 전공하며 무대에 섰다. 무대에 서는 자체가 공포였다. 탈수기처럼 덜덜덜 떨었다. 대학교 입시 실기 시험 때에는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해 매번 떨어졌다. 좌절을 맛보며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낯선 이들 앞에 나를 보여 준다는 건 두려움이었다.


아이를 낳은 후에도 극성맞은 두 아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가면  신경이 곤두섰다. 독일 아이들 사이에서 동양인 두 아들은 단연 눈에 띄었다. 두 아들이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면 나무랐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게 싫었다. 그런 나에게 다운증후군 딸이 태어났다. 막막했다. ‘나를 아는 지인들이 나를 가여워 여기지 않을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했다.


건강하게 태어나지 못한 딸을 데리고 자주 병원을 다녔다. 근육에 힘을 기르기 위해 물리치료도  2회씩 다녔다.  번씩 만나야 하는 물리치료 선생님과 친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주일에   집으로 방문하는 놀이 선생님을 정해진 시간에 만나야 하는 부담도 컸다. 놀이 그룹까지 다니며 오로지 혼자 해내야 하는 것에 스트레스가 컸다. 다희가 아파 병원에 입원해야 하면  신경이 쏠렸다.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 긴장했다.


다희 엄마이며, 보호자이며, 대변인이 되어야 했기에 씩씩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을 자주 다니며 만나는 의사, 간호사들에게 다희의 보호자로서 다희가 겪는 아픔을 자세히 말해야 했다. 여러 번 하다 보니 어색함은 점차 사라졌다. 물리치료 선생님에게는 대변인이 되어 집에서 연습했던 걸 이야기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시간에 집으로 방문하는 놀이 선생님에게 다희와 함께 할 놀이에 대해 물어보았다.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일이라면 다희에게 최선의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변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놀이 교실에 가서는 다운 천사 엄마들과도 스스럼없이 말했다. 사람들과 만나서 교제하는 게 더는 두렵지 않았게 되었다. 다운 천사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그런 부분에서는 다희에게 고마웠다.  덕분에 삶에 활기를 찾았다.


도전에 대한 용기도 생겼다. 대학교 졸업 이후 나를 위해 뭔가 배울 생각을 못 했다. 육아가 전부인 삶은 그저 흘러갔다. 배워 보려는 의지도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소소하게 다희를 위해 적어오던 육아 일기장을 들춰보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게 됐다. 블로그도 하게 되더니 급기야는 글쓰기에 도전했다. 글 쓰는 건 고작 아이들 육아 일기가 전부였다. 배우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일대일 집중 수업을 통해 한발 내딛게 되었다. 갈길은 아직 멀지만 시작이 반이라 여기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중이다.


부끄럼 많고 낯선 환경을 힘들어하던 나를 다희가 변화시켰다. 다희를 우리 가정으로 보내신 이유는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은 그저 주어진 대로 수동적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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