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아기들은 뒤집고, 배밀이하고, 기고, 잡고 일어서고, 걷고, 뛰고를 자연스럽게 해낸다. 두 아들도 그랬다. '다운증후군'다희 에게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길고도 힘들었다. 근육에 힘이 없어 생후 3개월부터 일주일에 두 번 물리치료받았다. 너무 이르다 생각했지만 체계적인 독일의 시스템 안에서는 빠른 게 아니었다. 다희를 아기띠에 메고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물리치료라고 하지만 거의 운동에 가까웠다.
누워있는 아기의 몸과 다리를 잡아 뒤집기 연습을 시켰다. 그 덕분인지 4개월에 뒤집기를 했고 6개월에는 뒤집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게 됐다. 부지런히 다닌 효과가 있어 보람됐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 발달단계로 나아가기까지 기나긴 기다림이 이어졌다. 느린 다희의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에 지쳐 갔다. 아가인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다희는 10개월이 되어서야 배밀이를 했다. 그쯤이면 두 아들은 잡고 일어서기를 하는 시기였다. 다희는 11개월에 겨우 혼자 앉았다. 14개월 때 집에 있는 연습용 계단에 힘겹게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15개월이 되어서야 잡고 일어섰고, 17개월 벽에 등을 대고 섰다. 일반 아이들은 돌 전후로 걷기 시작한다. 다희가 겨우 섰을 때 두 아들은 이미 온 집안을 뛰어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희는 19개월에 걸음마용 워커를 밀고 다니며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희가 두 살 생일을 맞으며 걷기를 바랐다. 다희 생일날 친정 부모님이 축하해 주러 왔다. 모두 모인 자리에서 다희는 오로지 혼자 힘으로 다섯 발자국을 뗐다. 기적 같았다. 지켜보던 우리는 손뼉 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첫째는 보고도 믿기지 않아 “걸었어, 걸었어!”를 반복했다. 친정엄마는 벅찬 감동으로 눈시울이 빨개졌다. 나와 남편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둘째 아들은 와락 다희를 안았다. 두 살 생일 파티에서 첫걸음마는 뜻깊었다. 기쁨도 배나 더 했다. 다희는 되려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었다. 때맞춰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두 아들을 보며 난 모든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무심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은 모두 축복이었음을 다희를 키우며 깨달았다.
여전히 느린 시간을 살고 있는 다희는 만 4살이다. 온 동네를 뛰어다닌다.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의 페달을 천천히 밟는다. 씽씽이도 한 발로 밀며 앞으로 쭉 나간다. 4년 전만 해도' 다운증후군'이라는 것에 눈이 가리어져서 지금의 다희를 상상하지 못했다. 그 당시 다운 천사를 이미 키워낸 독일 선배 엄마가 해준 말이 있었다. "울지 마세요. 분명 아이는 건강하고 예쁘게 그리고 멋지게 자라날 거예요. 슬픈 마음보다는 품에 안겨있는 사랑스러운 아기를 꼭 안아주세요." 그 말에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