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은 한창 성장기라 돌아서면 배고프다. 밥을 먹은 지 고작 2시간 지났을 뿐인데 간식을 달라고 한다. 반으로 잘라 랩에 씌워둔 수박이 불현듯 떠올랐다. 급하게 냉장고 문을 열어 보니 곪기 일보 직전이었다. 빨리 먹어야 했다. 믹서 기에 갈아서 온 식구가 한 컵씩 마셨다.
수박을 마시고 얼마 뒤 다희가 탈이 났다. 소화 기능이 약하게 태어난 '다운 천사' 다희는 이유식도 늦게 시작했다. 새로운 이유식을 만들면 조금씩 주며 적응을 살폈다. 두 아들 키울 때에는 시판에 파는 이유식을 사다 먹였지만 다희만큼은 집에서 만들어 먹였다. 새로 만든 유식이 몸에서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날에는 영락없이 토했다. 시작된 토는 쉽게 멈추지 않았고 탈진 상태까지 이르렀다. 다희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가는 게 일상이었다. 오늘은 설사였다.
약한 다희를 위해 먹여오던 글리코 영양소 덕으로 1년 넘게 무탈했다. 글리코 영양소는 우리 몸의 세포가 필요로 하는 성분을 채워준다. 우리 세포들이 원래 해야 할 기능을 회복시켜 우리의 몸이 스스로 일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설사가 시작된 다희를 위해 평소 먹여오던 글리코 영양 소양을 조금 더 늘려 먹였다. 설사는 점차 줄었다.
수박을 먹이지 말걸 하는 후회와 죄책감이 들었다. 아픈 다희는 칭얼거리며 양손을 벌려 안아 달라고 한다. 다희의 몸무게는 13킬로그램이다. 다희의 무게를 감당해 내기 위해 아기 띠로 안았다. 2년 만에 해보는 아기 띠는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키가 1미터나 되는 다희는 아기 띠에 다 들어가지 않았다. 커진 다희를 안고 집안 곳곳을 걸어 다니며 달랬다. 내 허리가 '견디기 힘들어' 아우성이었지만 나보다 힘들 다희를 위해 허리 통증을 참아냈다. 힘없이 축 늘어져서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핼쑥해진 다희의 눈과 마주치자 자책이 되었다. "엄마가 많이 미안해"라고 말해주며 더 꼭 끌어안았다. 다희는 이내 잠들었다.
2년 전만 해도 내 품에 쏙 안겼었는데. 이제는 제법 묵직한 느낌이다. 태어났을 당시 3.5 킬로그램에 키는
49 센티미터였으니 결코 작지 않았다. 하지만 커갈수록 몸무게는 잘 늘지 않았고 키도 작아 어디든 쏙 들어가면 찾지 못했다. 배는 볼록하고 팔다리는 살이 없어 안쓰러웠다. 오죽하면 병원에서 영양 학사를 만나 상담받아 보라 했을까. ‘살이 붙어야 힘도 생기지’라는 마음으로 다희에 한 숟가락을 더 먹이면 바로 토했다. 그렇게 여리고 약 했던 다희는 어느새 이렇게 커서 몸무게도 13킬로그램이고, 키는 1미터가 되었다. 신통하고 감사하다.
새근새근 숨소리가 듣기 좋다. 따뜻한 체온과 말랑말랑 닿는 살의 촉감이 좋다. 침대에 눕히기 아쉽다. 결국 안고 있기로 한다. ‘폭 자고 일어난 다희는 해맑게 웃어주겠지?’ 다희 머리에 코를 파 묻는다. 콤콤하게 올라오는 땀 냄새가 좋다. 잠든 다희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는데 이마가 볼록한 작은 얼굴, 짙고 예쁘게 뻗은 눈썹, 쌍꺼풀 없는 감긴 눈, 짧은 속눈썹, 낮고 귀여운 코, 젤리 같은 입술, 오밀조밀하게 생긴 모습이 사랑스럽다. 이 예쁜 아이의 엄마라서 행복하고, 감사해서 눈물이 핑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