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염색체에 두 개씩 짝이 있다. 다운증후군에게는 짝이 맞지 않는 슬픈 염색체가 있다. 바로 21번 염색체다. 21번은 셋이 함께 지낸다. 그중 하나가 짝이 없어 시기 질투가 나는지 이로 인해 대부분의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자주 아프다. 내 딸도 21번 염색체가 3개다. 자주 아픈 딸을 돌보며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염색체를 하나 더 가지고 있으니 슈퍼히어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라며 푸념한 적도 있다. 매년 3월 21일에는 다운증후군의 날이다. 해외에서는 날짜를 먼저 쓴다. 이렇게 21일 3월로 표기하기 때문에 21번 염색체가 3개라는 뜻이 된다. 21번 염색체가 3개라는 뜻으로 전 세계의 다운증후군의 날로 정해졌다.
이 날에는 다운증후군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캠페인이 이루어진다. 염색체를 닮은, 발목이 긴 짝짝이 양말을 신고 사진을 찍는다. 21번 3번째 염색체의 짝을 지어준다는 의미를 안고 있으며 다운증후군을 가진 이들을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이해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캠페인이다.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며 사람들에게 공유한다. 나 역시도 다운 천사 딸이 태어나고 이를 알게 됐다. 2017년의 끝자락에 태어난 딸은 2018년
3월에 처음으로 다운증후군의 날을 맞았다. 독일에 있는 친정 식구들, 한국에 있는 시댁 식구들, 그리고 우리 가족을 사랑하는 지인들이 함께 했다. 발목이 긴 짝짝이 양말을 신고 각자의 SNS에 인증해주었다. 뜻깊은 해였다.
처음 맞이하는 다운증후군의 날처럼 내 마음을 벅차게 했던 유튜브 영상이 있었다. 50 Mums, 50 KIids, 1 Extra Chromosome라는 제목의 영상에는 ‘그대여, 두려워하지 말아요. 난 당신을 천년 동안 사랑해왔어요. 그리고 천 년을 더 사랑할 거 에요.’라는 노래가 나온다. 그 음악에 맞춰 50명의 엄마와 50명의 다운증후군 아이가 수어로 노래한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전율이 올라왔다. 딸을 낳고 얼마 되지 않을 때라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이 영상을 보며 두려움이 한 줌 빠져나갔다. 내 딸뿐 아니라 전 세계에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있구나 생각하니 위로가 되며 힘이 솟았다.
50 Mums, 50 KIids, 1 Extra Chromosome 영상
영상 속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저마다 엄마의 모습을 닮았다. 아이들은 마치 아침햇살 같이 빛나고 예뻤다. 난 딸을 품에 안기 전에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다 똑같은 모습일 거라 생각했다. 딸도 자라면서 부모인 우리를 닮아갔다. 딸은 내 볼록한 이마를 닮았고, 쌍꺼풀이 없는 남편 눈을 닮았다. 성격 또한 신기하게도 닮았다. 자립심 강한 남편을 닮아 뭐든지 혼자 하려 든다. 조금 도와주려 손을 뻗으면 탁 쳐내며 인상을 찌푸린다. 물건을 줄 맞춰 각 잡는 건 내 어린 시절과 똑 닮았다.
내 딸은 조금 특별한 유치원에 다닌다. 한 반에 20명의 다양성을 가진 아이들이 어우러져있다. 눈처럼 새하얀 머리와 눈썹을 가진 백색증의 아이도 있고, 휠체어를 타는 아이도 있다. 다운증후군 아이도 있으며 다리에 보조기구를 끼는 아이도 있다. 올해 다운증후군의 날을 위해 딸이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멋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다운증후군 아이들의 개인 포스터를 제작해주었다. 유치원 문 또는 벽면에 아이들의 큰 포스터가 붙었다. 포스터는 딸에게도 뜻깊은 선물이 되었다. 다운증후군 아이들의 학부모 이야기, 아이들 성장 과정을 담아 잡지도 발간됐다.
매년 3월 21일이 되면 우리 가족은 발목이 긴 짝짝이 양말을 신고 사진을 찍는다. 올해도 캠페인에 참여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알록달록 예쁜 양말을 가족 수대로 구입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년 다운증후군 날이 떠올랐다. 무려 30명이나 되는 지인들이 캠페인에 동참했었다. 나는 30명 지인들이 SNS에 올렸던 컬러풀하고 예쁜 양말 사진을 한대 모았다. 모아진 사진은 딸에게 멋진 의미가 담긴 사진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