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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존더스 Apr 01. 2022

비글 세 마리

첫째는 4년을 혼자 조용히 컸다. 육아 서에 나오는 정석의 아이였다. 모유수유를 끊을 때도, 공갈젖꼭지를 끊을 때도 수월했다.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 탓에 저지레라고 해봐야 물휴지를 뽑는 게 전부였다. 둘째가 태어나고 기기 시작할 무렵부터 집은 엉망이 되어갔다. 호기심 많은 녀석은 기어 다니며 이곳저곳 손에 닿은 건 다 끄집어 내리고 망가뜨렸다. 둘째가 걷기 시작할 무렵에는 샤워기를 틀어 하수구도 없는 건식 화장실 바닥에  물을 뿌렸다. 그 모습을 본 첫째는 자작자작하게 물을 받았다. 화장실 문 밖으로 물이 세 나가지 않게 벗은 옷과, 수건으로 댐을 만들었다. 팀워크가 좋았다. 두 녀석은 물비누를 여지없이 바닥에 부어 슬라이딩을 했다.

첫째는 자기와 다르게 뭐든 겁 없이 해내는 둘째를 따라다니며 재미있어했다. 대부분 놀이의 발상은 둘째 머리에서 나왔다. 때로는 100장짜리 메모지를 눈처럼 거실에 뿌렸다. 50장 되는 포스트잇을 보이는 곳곳마다 붙였다. 하얀색 옷장에 풀을 덕지덕지 바르고 알록달록 색종이를 붙였다. 옷장은 컬러풀하고 거지 같이 변했다. 해맑게 웃으며 "엄마, 예쁘지?"라는 두 아들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화장실 청소를 하겠다며 변기 솔로 벽을 문질렀다. 셋째를 뱃속에 가지고는 하루가 다르게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두 극성이를 쫓아다니는 일은 고단했다. 소리를 얼마나 질렀는지 어느 날에는 목이  잠겨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벌을 새우고 혼도 내지만 잠시뿐이었다. 얼마 못 가 또 다른 저지레를 생각해 냈다. 그 작은 머리는 아이디어 뱅크였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셋째가 태어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나의 기대는 오산이었다. ‘초등학생까지 되었으면 둘째의 저지레를 막지는 못해도 부추기지 말아야지 않을까?’ 한 날은 둘째가 셋째의 분유통을 실수로 떨어뜨렸다. 셋째를 재우는 사이 첫째, 둘째는 쏟아진 분유 가루 위에 뒹굴며 놀았다. 셋째를 눕히고 방에서 나온 나는 눈을 비비고 또 비비며 두 녀석의 몰골을 확인했다. 분유 값이 얼만데. 아기가 먹는 분유인데. 머털도사 만화에서 보면 화가 났을 때 머리털을 새우는 것처럼 내 머리카락도 설 것 같았다. "너희들은 엄마를 괴롭히기 위해 태어났지? 걸레로 닦아." 라며 걸레를 두 녀석 발 앞에 던졌다. 잘 닦을 리 만무한 녀석들. 또 장난질이었다.


분유 가루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코코아 가루에 물을 묻혀 머드 팩 하듯 온몸에 치덕치덕 바르면. 내 이이성은 안드로메다로 간다. 순간 미친년이 된다.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소리를 한데 모아 내질렀다. "이런, 거지 같은 세끼야, 멍멍 세끼야." 내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이웃집에서 뛰어 올라왔다. 아이들을 학대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돌려보냈다. 독일이라는 나라에서는 소리도 마음대로 못 지른다.


셋째는 자라며 두 극성맞은 오빠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겁 없이 높은 곳도 순식간에 올라가고 미끄럼들도 엎드려서 타고 내려왔다. 모래에 얼굴이 처박혔고 입에든 모래를 씹어 먹었다. 비눗방울 놀이를 한다며 화장실에서  '호호' 불었는데 얼마 못 가서 우당 땅콩탕 소리가 들려왔다.'비눗물을 바닥에 쏟아부었겠구나 그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겠지?' 문을 열어보니 내 예상은 적중했다. 그 와중에 둘째는 "엄마, 핸드폰으로 찍어." 란다.  그뿐인가 그림 그리자는 녀석들의 성화에 못 이겨 스케치북을 여러 장 뜯어서 식탁에 깔아줬다. 막내딸에게 새로운 경험을 해 주고 싶어서 물감을 꺼냈다.  

신이 난 녀석들은 저마다 색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세탁이 다 되어 '삐리리' 알림 소리를 듣고 확인하러 갔다. 빨래를 꺼내 건조기에 옮기고 돌아왔는데. 스케치북을 벗어나 하얀색 식탁 위에 알록달록 그림이 그려졌다. 그것도 모자라 둘째와 셋째는 손바닥을 펴서 식탁 위를 문지르며 행위예술에 심취했다. '나 이러고 살아야 하는 걸까? 너무 힘들다.'  80년대 나 어릴 적 뜻도 모르고 따라 부르던 "울고 싶어라. 울고 싶어라 내 마음"처럼  진심 울고 싶었다.  화장실에 들어간 둘째가 깜깜무소식이다. 다 쓴 휴지 심을 물에 살짝 불려 분리시킨 모습은 다이몬드 모양이었다. 나름 예쁘다 생각했는지 거울 위에 덕지덕지 붙였다. "야!!"라는 내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둘째의 눈이 커졌다.



셋째를 임신했을 때 내 친구는 "셋째는 둘째보다 조금 얌전한 아이를 주실 거야" 라며 날 위로했다. 그러나 셋째도 대단했다. 하얀색 찻장에 검은색 매직으로 멋지게 그림을 그렸다. 예쁜 찻잔을 돋보이게 해 주던 찻장이었는데. 눈물이 와락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세면대에 물을 받아 새 기저귀를 투척하기도 했다. '기저귀 값도 한 두 푼이더냐.' 울분을 삼켰다.


셋째를 유치원에 보내려고 예쁘게 단장해 주었는데. 주황색 형광펜을 양손에 꼼꼼하게 칠했다. 비누로 지워보지만  색은 옅어졌을 뿐 더 지워지지 않았다. 색도 골라도 주황색이었는지 피부병에 걸린 것처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다희 손이 왜 이래요? 피부병인 것 같아요 병원에 가봐야겠어요." "등원 전 그림을 좀 그렸어요. 자세히 보시면 알 거예요." "하하하 그러네요." 라며 전화가 끊겼다. 내 얼굴은 화끈거렸다.

셋째는 두루마리 휴지로 온몸에 칭칭 감고 미라처럼 나타난다. 세탁기를 무대 삼아 그 위에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른다. 곰돌이 푸가 꿀단지를 품에 안은 것처럼 누텔라 병을 품에 안고 손으로 퍼먹는다. 평소에는 손도 잘 씻더니 물소리가 유난히 길게 들리던 날 들여다보면 세면대에 들어가 앉아 몸에 물을 붓고 있다. 세면대에서 흘러넘친 물은 건식 바닥에 흥건했다. 나는 바닥을 닦으며 물먹은 수건을 손으로 짜냈다. 우리 집 삼 남매는 3대 악마 견 비글 같다.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내 손목은 감각을 잃었다. 항상 둔한 느낌을 안고 살아간다. 손가락의 관절은 두꺼워져서 결혼반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허리 통증은 고질 병이 되어 나와 함께 살아간다. 삼 남매 육아를 가까이서 지켜본 친구는 자기 같으면 신경쇠약에 걸렸을 거란다. 난 수더분하고 무던한 성격 탓에 유난히도 유별난 삼 남매를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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