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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존더스 Apr 12. 2023

끄나풀을 잡고싶었던 요리시간

저번 주 월요일부터 시작된 부활절 방학은 이번 주 까지다. 원래라면 돌보미 교실에 보냈을 텐데 이번 방학에는 신청하지 않았다. 165센티미터로 훌쩍 커버린 첫째와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다고 느껴졌다. 이미 사춘기 문턱에 들어서며 누가 누가 이기나 겨루기 중이다. 첫째가 동굴로 더 깊숙이 들어가기 전에 끄나풀이라도 잡고 싶었다. 억지스러워도 추억이 되지 않을까? 우겨본다. 생각해 보면 첫째와 함께 요리를 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요리해야 하니깐 동생들 좀 돌봐줘’라며 떠넘기기 바빴다. 이번 방학에는 ‘삼 남매와 요리부터 해보자!!‘ 를 속으로 다짐했다.


우선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은 아름다웠다. 삼 남매를 불러 손을 씻게 했다. 첫째는 투덜거리며 하는 수 없이 따라줬다. 걸기적 거린다는 이유로 매번 내몰리던 부엌에 당당하게 출입하는 둘째, 셋째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서로의 컨디션을 위해 신나는 음악을 틀었다. 함께 할 수 있는 간단한 요리로 야채볶음밥이 딱이었다. “지오는 계란을 가져오고, 태오는 당근을 꺼내와, 다희는 감자를 가져와 볼까?”라는 내 말에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계란을 들고 오는 지오, 당근을 양손에 하나씩 쥐고 오는 태오, 감자 망을 통째로 낑낑거리며 들고 오는 다희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첫째와 함께 당근, 감자 껍질을 깎았다. 그 사이 두 녀석은 서랍을 열며 무슨 재미난 일이 없을까 궁리 중이었다. 저지레가 벌어지기 전에 둘째, 셋째의 도마 위에 손질한 야채를 놓아주었다. 두 녀석의 도마 위에서는 당근과 감자가 춤을 췄다. 삐뚤빼뚤 못난이로 잘라진 당근모양이 재미있는지 웃음보가 터졌다.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가 부엌 안을 가득 채웠다. 시크한 첫째는 팔짱을 끼고 유치한 듯 두 동생을 바라봤다.


준비된 야채들을 프라이팬에 모았다. 볶아야 할 시간. 보나 마나 자기들이 하겠다고 들이밀 것 같았다. “이건 뜨거우니깐 엄마가 할게 너희들은 바닥에 떨어진 야채 정리와, 도마를 씻어.”라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싱크대에서는 분수쇼가 일어났다. 비스듬히 기울여서 씻어야 하는 도마를 수평으로 두고는 ”우와 “를 난발했다. 아이들 옷은 삽시간에 물에 스며들어갔다. 점점 내 일은 늘어갔다.


첫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엌을 나갔다. 내 마음의 소리는 한계에 다다라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이었다. 억지로 꾹꾹 눌러 담아 보지만, 결국 터져 나왔다. “야!!!! 너희들 대체 나한테 왜 그래 당장 나가!!!‘ 라며 부엌에서 쫓아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아름다운 그림은 내 바람이었구나. 대충 요리를 마무리 짓고는 둘째, 셋째를 챙겼다. 엄마의 큰소리에 마음이 상한 두 녀석은 씰룩였다. 아이들을 꼭 끌어안았다. 보드라운 살 냄새가 코끝에 와닿았다. 화났던 마음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포옹은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위안이 됐다.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 두 녀석은 맛나게 입안 가득 볶음밥을 넣었다. 볼이 빵빵한 다람쥐 같은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무쪼록 남은 며칠은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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