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릇파릇 숲이 울창해지는 여름에 만 11살 첫째 아들은 사춘기가 시작됐다. 예민하고 불안이 컸던 첫째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집에서 2분 거리의 학교도 혼자 가지 못했다. 2학년이 될 때까지 데려다주고 데려왔다. 유치원 등원해야 하는 둘째 , 돌이 막 지난 셋째를 데리고 더 이상은 무리였다. 3학년이 되며 ‘혼자 할 수 있지?’ 라며 등 떠밀어 학교를 보냈던 날 녀석은 학교에서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3학년이 된 둘째 날 시위라도 하듯 녀석은 집 대문에서부터 힘겨루기를 했다. 억지로 끌고 교문 앞까지 갔다. 급기야는 교문 앞에 주저앉았다. 어이없게도 멀쩡하던 다리가 아프다며 울고불고 난리였다. 첫째에게 휘둘릴 수 없었다. 난 고집스럽게 첫째를 울렸다. 뛰어나온 담임선생님은 첫째를 달래며 엄마인 나를 이상히 여겼다. 등교 중인 다른 아이도 챙겨야 했던 담임선생님은 녀석을 집으로 데려가라 했다. 난 한발 물러서면 안 된다며 오기로 버텼지만 수업 종이 쳤다.
결국 집으로 녀석을 데려왔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참아냈다. 어금니를 얼마나 세 개 깨물었는지 안쪽 살이 헐었다. 학교에 가지 않을 이유를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문 녀석 때문에 담임 상담도 자주 했다. 담임은 녀석을 살뜰히 챙겼다. 친구들은 녀석과 친해지려 노력했다. 학교에 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뭐 하나 쉬운 게 없던 녀석의 사춘기가 시작됐다. 녀석을 대할 때마다 감정 소모로 힘이 빠진다.
첫째는 가을 학기부터 중,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아직은 수업이 일정하지 않아 수시로 바뀐다. 5교시 수업이 없어진 첫째에게 전화가 왔다. “수업이 없어졌어 지금 빨리 와.” “동생 데리러 갈 시간이라 아빠가 데리러 갈 거야 아빠가 하던 일 마무리 짓고 가야 해서 15분 정도 걸려.” “아씨 그냥 엄마가 와!”라는 첫째에 말에 화가 치밀었다. “내가 네 기사냐!! 너 밖에 몰라? 기다릴 동생은? 싸가지를 밥 마라 먹었어!!” 라며 언성을 높였다.
형을 학교에 데려다줘야 하는 엄마를 양보한 둘째는 혼자 쓸쓸히 학교에 갔다. 둘째의 모습이 마음에 걸려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했었다. 둘째와의 약속이 먼저였다. 둘째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 집 문 앞에서 첫째를 만났다. 투덜거리며 들어오는 첫째는 나에게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집어던지고 손을 씻는 둥 마는 둥 핸드폰을 붙잡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뒤통수를 후려 치고 싶었다. 그 상황이 벌어지면 감정의 소용돌이를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 참았다.
둘째와 4년 8개월 차이 나는 녀석은 심심하면 동생을 괴롭혔다. "싫어, 괴롭히지 마!!" 라며 소리 지르는 둘째의 말을 철저히 무시하고 온몸으로 짓눌렀다. 둘째는 싫다는 표현을 거절당해 더 악을 썼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둘째의 성격이 괴팍해져 갔다. 괴롭히지 말라고 첫째를 혼내지만 내 말은 허공에서 흩어졌다. 녀석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녀석은 삐딱하게 서서 나를 쳐다봤다.
“이 새끼야!! 너 마음대로 할 거면 나가!!” 단전에서부터 힘을 모아 소리를 내질렀다. 엄마의 소리 지른 모습에 놀라 얼음이 된 녀석과 대치 상태로 적막이 흘렀다. 일하고 집으로 돌아온 아빠에 의해 정리가 됐다. 녀석은 아빠의 말을 듣고 서야 나에게 와서 “엄마, 미안해요.”라고 말했다. 녀석을 꼭 끌어안았다. 160센티미터의 덩치 큰 녀석은 내 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도 소리 질러서 미안해”라는 말에 녀석의 몸이 들썩였다. 소리 없이 흐느꼈다.
항상 첫째보다는 어린 두 동생이 먼저였던 나를 돌아보게 됐다. 첫째에게 많은 짐을 지웠다. ‘첫째니깐 듬직해야지, 네가 잘해야 동생들도 잘하지,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야지.’ 그 당시 첫째는 고작 6살이었다.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아직은 필요했던 나이.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