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겜돌이 교사의 ‘교실을 게임처럼, DBWORLD’–6-

나는 ‘보드게임 마스터’가 될 거야, 칭호

by 무티

「선생님 저는 보드게임 마스터가 될 거예요!」

해적왕이 될거야.png

다시 상태창으로 돌아와서, 상태창을 만들 때 가장 먼저 했던 작업은 칭호였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나의 처음을 이끌어내 준 부분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좋아하고 있음을 몸소 느꼈기 때문에 실패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떤 칭호를 주면 좋을까 깊게 생각하지 않고 생각나는 것을 아무거나 칭호로 만들었다. 부여하는 방법도 내가 보면서 학생이 그날그날 빛나는 부분이나 뛰어난 결과물에 대해서 즉흥적으로 부여하는 형식으로 진행을 했었다.

초창기모습.png

(어떤 칭호를 쓸까 생각하다가 내가 즐겨했던 로스트아크라는 게임이 생각났다. 로아에는 저런 조합형 칭호가 있어서 이런 느낌으로도 만들어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이름이 특이하여 별명이 드물었던 내게 이름 말고 불릴 수 있는 ‘어떠한 것’은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요소였다. 칭호를 먼저 시작한 것은 어쩌보면 나의 욕심과 재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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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상했듯이 아이들의 반응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아이들은 칭호라는 컨텐츠 자체를 좋아했고 여러 칭호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안 읽던 책을 읽을 읽기 시작했고 자기 자리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었다. 이 당시 칭호리스트는 나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이런 칭호가 있지 않을까 하면서 탐험하는 느낌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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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호에 학생들의 흥미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다양한 칭호가 필요했고 그러다 보니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생겼다.

선생님 저 친구 이렇게 해서 칭호 받았는데 저도 했어요. 칭호 주세요?
아 그래? 알았어~

나중에는 이렇게 내가 허덕이는 상황에 처하게 됐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주먹구구식이 아닌 체계화하여 볼 수 있는 모양새가 필요했다. 그래서 칭호북 형태로 학생들에게 공개를 해버렸다.

이런 변화가 있던 다음 한 학생이 재밌는 이야기를 건넸다.

선생님 저는 보드게임 마스터가 되겠습니다!

활동에 참여하려는 욕구도 부족하고 그저 흘러가는 데로 살아가던 아이의 말이었기 때문에 더 크게 울렸을지도 모른다. 너무 반가운 마음과 함께 나는 칭호가 가진 힘을 알게 되었다.


칭호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유도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칭호 리스트를 보고 획득조건을 확인한 다음 이에 맞는 행동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게임에서 업적을 달성하기 위해 퀘스트 재료를 주우러 다니는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아이들이 진짜 게임처럼 하고 있구나, 재미있게 참여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변화요소.png

(획득조건을 명시하자 아이들은 그 칭호를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초반에는 아직 획득조건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추가하고 수정하고 있다.)

(획득조건이 명확하지 않은 것도 상황 따라 교사의 재량껏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나쁘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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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칭호를 부여하는 것은 상당히 귀찮긴 했다. 너도나도 기준을 달성해서 오다 보니 이 칭호, 저 칭호 다 따게 되었고 이걸 부여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게 되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태생이 게으르고 편한 것을 좋아하다 보니(중요!ㅎ)

가뜩이나 일도 바쁜데 이런 일련의 일들이 복잡함으로 다가오면 흥미가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기준을 점검하여 어느 정도 얻는 데 난이도를 높였고, 본인이 획득한 칭호들을 개인 프로필에서 가져올 수도 있도록 만들었다.

칭호부여방법.png


(물론 여전히 내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있지만 복사 붙여넣기만 하면 되어서 크게 손이 줄긴 했다.)

(여러 칭호들 중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칭호를 번갈아 가면서 낄 수 있는데 와서 요청만 하면 딸깍 한방으로 바꿀 수 있도록 모조리 링크로 변동시켰다. 이 ‘딸깍’은 내게 정말 정말 중요하다! 복잡한 건 너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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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칭호에 대한 체계가 잡혀가기 시작하자 조금 더 욕심을 냈다. 나중에 서술하게 될 아이들의 수준 차이를 보다 쉽게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칭호에 추가 스텟을 부여했다. 칭호를 얻으면 어떤 능력치를 올려주어 자신에게 부족한 스테이터스를 채울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결과는 실패했다.

정확히는 너무 귀찮아졌다. 칭호를 얻은 뒤 이를 바꿀 경우 스텟 관리를 내가 지속적으로 해줘야 하는데 이게 너~~무 복잡했다. 또한 칭호 그 자체에 동기화되었을 때보다 뭔가 받아 들이는 부분에서 주객이 전도되는 느낌이었고, 그래서 이 부분은 현재 사용하지는 않고 있다.

단, 정말 노력하고 애쓰는 학생의 경우(가령 예를 들면 성적이 낮지만 학교에 남아서 끝까지 공부하고 오답노트를 계속해오는 훌륭한 유니콘 친구들) 스페셜칭호라고 하여 능력치를 부여한 칭호를 하사해서 운영하는 형식으로 지금은 변경된 상태이다.

효과칭호.png


사기칭호.png

이걸 보고 원격 회의 때 한 동료 선생님은 게임도 이렇게 칭호 팔아먹으면 욕먹는다고 해줬다...)

(스텟을 부여하되 칭호의 적용 기간을 정해두거나 1주일에 바꿀 수 있는 칭호의 횟수를 정해 놓는 방법으로 운영하면 좀 쉽게 운영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아직 시도는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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