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 36번 시 중
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 36번 시 첫째 연은 '결국 죽음은 끝없는 부엌이 아닐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죽음이라는 이름은 시커먼 바닷속처럼 깊다. 손끝으로 헤아릴 수 없고, 눈으로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 두려워서 외면하기 일쑤이고, 이야깃거리나 배움과 가르침의 대상으로도 가능하면 멀리한다. 삶에서 가장 확실한 순간인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채, 우리는 경황없이 떠나거나 떠나보낸다.
36번 시 전문은 다음과 같다.
네루다의 고독은 망명 생활 그 어디 즈음에서 죽음을 환대하는 시를 지었다.
결국 죽음은
끝없는 부엌이 아닐 것인가?
당신의 부서진 뼈는 다시 한번
당신의 형상을 찾으며 무엇을 할까?
당신의 절멸(絶滅)은 또 하나의
목소리와 다른 빛에 흡수되지 않을까?
당신의 벌레들은 개들과
나비들의 일부가 되지 않을까?
결국 죽음이란 끝없이 반복되는 부엌이 아닐지, 당신의 부러진 뼈가 다시 모양을 찾는다면 그 뼈는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당신의 사라짐은 또 다른 목소리와 빛 속으로 녹아들어 없어지는 게 아닐지, 당신을 먹는 벌레들은 개나 나비의 일부로 바뀌게 되는 것이 아닐지라는 질문으로 죽음의 모습을 엮는다.
죽음이 부엌이라면, 결코 멈추지 않는 공간일 것이다. 불은 타오르고, 냄비는 끓어오르고, 도마 위에서 칼은 쉼 없이 움직인다. 죽음이라는 이름은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처럼 아득하고, 부엌은 그 속에서 생과 사가 뒤섞이는 용광로다. 탄생과 죽음, 시작과 끝이 서로를 품고 끌어안는 자리이며 부엌은 매 순간 새로움과 소멸이 공존하는 메타포다. 생명이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부엌에서는 미역국이 끓는다. 삶의 시작을 환대하는 그 따스한 국물이 끓는 동안, 부엌은 탄생의 기쁨을 담는다. 그러나 삶이 끝날 즈음에는 죽이 끓는다. 희멀건 쌀알이 녹아든 국물은 몸과 마음의 마지막 온기를 전하는 작별의 음식이 된다. 죽음이 부엌이라면 그것은 삶이 소멸하며 다시 태어나는 끝없는 순환의 자리일 것이다.
죽음에 관한 르포르타주『그렇게 죽지 않는다』는 홍영아 작가가 취재한 50대 여성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부모의 임종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금기시돼 대화의 주제도 되기 어려워요. 그러다 보니 대부분 경황없이 부모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출처:중앙일보]
주인공인 50대 여성의 말은 너무나 사실적이다. 죽음은 우리의 삶 속에서 금기된 영역처럼 배움의 기회로 주어지지 않는다. 부엌에서 난생처음 칼을 쥔 사람의 두려움과 비슷할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칼은 움직여야 하고, 불은 타올라야 한다. 죽음 앞에서 우리의 모습도 그러할 것이다. 죽음의 순간은 이미 와 있다. 손끝의 온기와 입술 끝의 말, 침묵과 눈물이 마지막까지 생을 나누는 가늘고 얇은 희망이 된다. 죽음은 끝이라고들 말한다.
네루다에게 질문하고 싶다. "끝이라면 무엇이 끝나는 것일까요?" "부엌에서 국물이 바닥을 드러낸다고 해서 그 집의 이야기가 멈추는가요?" "그다음은 무엇인가요?"
네루다의 질문 안에는 우리의 부서진 뼈가 다시 새로운 모양을 찾아 무엇인가를 이루고, 죽음이 끝이 새로운 생명과 연결되는 고리를 선물로 받은 것이 아닐지 흩어지는 생각들을 붙들게 만든다.
저녁 한 끼를 차리면서 또 내일 아침 식단 재료를 준비한다. 한 끼가 끝나면 또 다른 끼니가 준비되고, 식탁이 비워지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이야기가 새 살처럼 차오른다. 불이 꺼지고 남겨진 잿더미 속에서도 우리는 물을 끓이고 소금을 넣으며 삶을 다시 요리해 나간다.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이 끝없는 부엌에서 또 다른 시작을 기다리는 쉼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루 종일 네루다의 질문이 부엌을 떠다녔다. 소고기 뭇국을 끓이면서 요양원에 계시는 시어머니와 이모와 연로해지시는 친정 부모님을 떠올린다. 그리고 우리 부부의 죽음도 생각해 보았다. 뭇국이 끓어오를 때마다 물었다. "죽음을 맞이하면 어떻게 할까, 죽은 다음은... 이다음은 무엇이 되나?..."
나는 기독교 세계관을 지닌 사람이다. 솔직히 말하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내가 더 두려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쌓은 수많은 추억과 죽음 후의 빈자리를 견디는 것이다. 그리고, 깊은 물길을 이기지 못하는 슬픔을 겪는 것이다.
오늘도 환우로 병마와 싸우거나 그의 곁을 지키며 기도하는 사람들, 먼저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부엌에서 또 하나의 생을 지을 것이다. 하루의 슬픔이 내일의 무게로 남아 있지 않기를. 부엌의 불이 꺼지지 않는 한, 우리에겐 새로운 하루를 끓여 낼 수 있는 힘을 선물 받았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불꽃에서 생과 죽음은 끓는다
내가 첫 월급을 탄 날,
아버지의 빈 그릇은 지난겨울의 무게를 담고 있다
떠난 자리는 떠나보내지 못한 말로 속을 채우고
남은 자리는 나누지 못한 식탁을 케이크로 대신한다
어머니는 소고기 뭇국을 한 그릇 더 올려놓고
큰 초 다섯 개와 작은 초 여덟 개에 불을 붙인다
생일 축하합니다, 아버지의 생신을......
촛농이 떨어질 때까지 소리 없는 노래를 부르고
부엌으로 돌아서는 어머니의 등을 따라
깊은 물이 흐르는 곳에 아버지가 업혀 있다
식어가는 국을 다시 떠오는 어머니 눈에
내가 가득 차 있다
질문에서 피어나는 아포리즘
부엌에서 우리는 죽음의 무게를 삶의 온기로 바꾼다
In the kitchen, we turn the weight of death into the warmth of life
내가 만드는 아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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