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의 자리

<용눈이 오름에서 : 김영갑을 기리며>

by 모카레몬




밥 먹을 돈 아껴서 필름을 산 님아


당신은 하늘이 뒤집히는 날이면

오름의 경사에 마음을 끌고 갔다


사진에 육신을 내어주고

눈과 비와 안개와 바람

그 사나운 합주에 비틀거렸지


흔들리며 흘려보낸 님의 흔적이

억새 잎끝에 촘촘히 달라붙어 있다


억새밭을 건너다

내 다리가 후들거려서

자꾸만 굽어진다


억새처럼, 억새보다 더 억새처럼


부러지지 않으려는 몸이
끝내는 자꾸 휘어진다


나는 배가 불러도 더, 더, 더 채우고는

허기를 핑계 삼아 몸보다 영혼을 무겁게 했다


님은 밥보다 필름을, 억새는 속보다 비움을 원했지


억새밭을 나와도

한참 동안

내 귀엔 카메라 셔터 소리처럼

떨림이 찍히고, 찍히고, 찍히고...


찍히는 건 풍경이 아니라

님이 비워 낸 끼니의 자리


억새 한 줄기마다

배부른 욕심을 들킨 사람처럼

휘어지고 또 휘어진다




갤러리 두모악을 나서며 용눈이오름으로 오른다.

민둥산의 억새밭과 다른, 제주 오름 특유의 빈 넓이가 한꺼번에 펼쳐진다.

자연은 아무 말도 없는데, 나는 그 침묵 앞에서 자꾸 배운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과 소리와 결과 꿈틀거리는 기척들에 귀를 기울인다.

한참을 들여다보면 창조 세계가 보이고, 사람이 보이고, 내가 보인다.

두모악에 전시된 김영갑의 사진들.

그가 오름의 눈, 바람, 비, 안개를 사진으로 찍은 건 풍경이 아니라

온전히 환희로 몰입한 영혼의 자세였다.





글벗 되어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명절 연휴 후유증이 무엇인지 모를 만큼

새로운 한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대문 1,2.3.사진. by김영갑.

사진. by mocalemon. (제주 여행길, 용눈이 오름에서)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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