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다

<시적 사물: 눈>

by 모카레몬




눈이 온 날이었다

차와 사람이 아주 조금

속도를 줄였다


눈은 꽃처럼 피지 않는다

그저 지나온 것들의 이마 위에

잠시 내려앉았다가

말없이 머문다


길은 잠깐 백색이 되고

사람들은 각자 무언가를 떠올리고

발밑에 내려놓는다


횡단보도 옆

노부부의 붕어빵 포장마차

돈을 내는 손과 온기를 감싼 손이

눈 속에서 같이 젖어 간다


건너편 길가에서 누군가 미끄러진다

아무도 붙잡아 주지 않는다

다들 신호만 보고 있다


눈은 그때도 가만히 내리고

기다리는 시간은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않는다


신호가 바뀌고 발이 움직인다


넘어지지 않은 채

눈 온 하루를 건너온다


붙들지 못하고

비틀거렸던 순간 하나가

하얗게 남아

아직 길 위에 있다






합평수업이 끝나고 첫눈이 내린 날,

비평보다 신호등 불빛에 내리는 눈을 오랫동안 보았다.

눈은 무엇을 고치러 온 게 아니라, 고요히 덮고 가는 쪽이다.

흰 종이 여백에 굴렀던 싯구들이 미끄러졌고, 붙잡는 대신 내버려 두었다.

시보다 함박눈이 길을 건너고 있었다.


글벗 되어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건너는 하루 보내시길 바래요^!^


사진. pixabay.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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