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림에선

<시적 사물: 비자나무>

by 모카레몬




비자림에 들어서면

키 큰 나무가 먼저 그늘을 만든다


낮은 풀과

젖은 현무암의 우기를 끌어안는다


볕은 한꺼번에 쏟아지지 않고

바늘잎과 잎맥 사이를 더듬어 내려온다


바람은 굵은 가지를 택하지 않고

잘 흔들리는 쪽에 길을 낸다


웅덩이에 고인 하늘이 둥글다


검은 돌 위

흐르지 않은 물이 잠깐 제 얼굴을 가지고

이끼에는 작은 벌레 하나가 느리게 건너간다


하늘은 가지 사이로만 잘려 있다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펴 본다

손바닥이 벌겋다


가져온 것보다

만져버린 쪽이 더 많아서


걸음이 느려진건지

빛살을 오래 보았기 때문인지







글벗 되어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2월을 업은 말의 등을 토닥이는 하루 보내시길 바래요♡


사진. by mocalemon. (제주 비자림에서)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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