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사물: 연근>
장 끝물에 사 온 연근을 씻어 도마 위에 올린다 칼을 밀어 넣으면 미끄러지듯
들어갔다가 어느 지점에서 한 번 걸린다 둔탁한 소리가 손목으로 올라온다
마디마다 잘린 자리가 둥글게 파여 있고 물기가 얇게 배어난다 하얀 단면이
촉촉하게 번들거린다 한가운데 둥근 구멍들이 촘촘히 뚫려 있다 한 토막 더
자르면 또 같은 무늬가 나온다 다른 마디인데 같은 자리 같은 간격
겹친 단면들이
도마 위에 늘어선다
잘린 건 몸통인데 모양은 달아나지 않는다 조각을 세워본다 구멍과 구멍이
위아래로 겹치고 눕혀두면 동그라미였던 것이 세워두면 길처럼 보인다
바깥은 조금씩 줄어드는데 안쪽은 그대로다
자르는 동안
깎여 나간 쪽보다
남은 쪽이 더 또렷하다
칼을 내려놓고 보니
도마 위에는 원만 남아 있다
그 안에
나도
글벗 되어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미년 삼월 일일의 기쁨이 이어지는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