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쇠그릇

<제주 4.3 평화 기념관. 다랑쉬 동굴 재현관에서>

by 모카레몬



기념관의 복도는 동굴처럼 길어서

눈물이 먼저 흐름을 만든다

심부는 낮을 밤으로 바꿔 놓고

사람의 호흡을 속으로 밀어 넣는다


유리 진열장 안에 널려 있는 생활도구들


놋쇠그릇이 있다

빛을 닦아 만든 그릇

그러나 빛으로 살지 못한 그릇


한 발 가까이 다가선다

가까워질수록 내가 가진 오늘이 무거워진다


그릇의 둥근 바닥

숟가락이 지난 자리

살아 있으려는 몸이 끝까지 잡았던 소리


유리 너머를 보다가

유리 속, 내 얼굴을 본다

너무 온전한 나는

유리 앞에서 자꾸 바깥으로 밀린다


어떤 엄마는 말 대신 그릇을 밀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어 먹는 시늉이라도 하자고

아이의 울음이 들키지 않게


놋쇠는 비어 있어도 울린다

비어 있기 때문에 더 오래 울린다


전시장을 나가며

밥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어느 아이의 마지막이었을까 봐


집으로 돌아가도

그릇을 내려놓는 소리를 내지 못할 것 같다


소리가 크면 울음이 들릴까 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총칼을 피해 숨어든 곳에는 생존을 위한 생활도구뿐이다.

아이와 여자와 남자. 가족, 가족들...


그들의 얼굴이 보여서 난 더 이상 관람자가 아니다.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눈을 감으면 그들의 얼굴이 또렷해질까 봐

삶과 죽음이 지나는 동안...


지나는 동안...



글벗 되어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by mocalemon.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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