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짓는 문장 81.
홀로, 그리고 함께
Alone, and still with others
자주 가지 않는 길에 그 집이 있다.
이층 양옥집은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얼굴을 하고 있다. 창문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담쟁이덩굴이 사방으로 뻗어가며 벽을 올랐다. 한여름에는 잎들이 빽빽하게 겹쳐 속을 잘 내주지 않았다. 가을이 되면 잎들은 붉게 물들어 하늘 가까운 쪽부터 천천히 색이 번졌다. 집의 윤곽은 볼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변화가 이 집이 지나온 시간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진달래 물이 오를 즈음, 오랜만에 그 길을 지났다.
잎이 떨어진 자리마다 줄기가 드러났다. 담벼락에 넓고 좁은 가지들이 촘촘하게 얽혀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길들이 엉켜 있었다. 굵은 줄기와 함께 먼저 붙은 줄기들이 벽에 자리를 잡고, 그 위로 다른 줄기들이 몸을 얹고 있었다. 벽을 찾지 못한 줄기 수 십 여개가 허공을 더듬다가 옆의 줄기를 붙잡고 방향을 틀었다. 이미 말라버린 줄기 위로 연한 줄기가 겹쳐 올라가고, 떨어진 자리는 또 다른 줄기가 들어와 틈을 메우고 있다.
먼저 닿은 자리가 길이 되고, 그 위에 또 다른 길이 겹쳐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여러 갈래다. 곧장 가면 금세 가는 길이 있고, 조금 돌아가지만 볼거리가 많아 재미있는 길이 있다. 여가가 있을 때는 돌아가는 길을 택했고, 급해지면 가장 빠른 길을 골랐다. 어떻게 가든 집에 도착한다.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면 그와 비슷하다.
학창 시절에는 남들보다 빨리 가려고 먼저 출발하는 성급함이 많았고
사회에 나와서는 남들보다 한 발 늦는 일이 빈번했고
결혼생활이 시작된 뒤에는 혼자서 끝까지 갈 수 없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담쟁이는 곧게 올라가지 않고, 돌아서 가고, 멈췄다가 다른 줄기에 기대며 다시 방향을 잡는다. 그렇게 몇 번이나 교차하고 어긋난 뒤에도 결국은 함께 뻗어 가고 있었다. 잎이 무성할 때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미 올라와 있는 것들만 보이기 때문이다. 시간과 함께 자란 과정은 벽 안쪽에 고스란히 기록된다. 한 줄기로는 감히 덮을 수 없는 벽을, 수많은 줄기가 함께 덮고 있다. 서로를 끌어올리고 붙잡으며 더 멀리 뻗어간다.
저 길들은 하나의 줄기가 그린 것이 아니다. 먼저 자리를 잡은 것들이 있었고, 그 위에 기대어 올라온 것들이 있었고, 방향을 잃다가 옆의 줄기를 붙잡고 돌아선 흔적도 있었다. 서로 다른 시작과 서로 다른 속도가, 한 벽 위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협력이란 말속에는 상대를 자신과 동등한 인격으로 대우한다는 사실이 함축되어 있다. 이와 같이 협력의 바탕에 깔린 인간 평등의식을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연대 관계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되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혈연, 지연과 같은 자연적이고 운명적인 연대만으로 살아갈 수 없으며, 인류라는 연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존 롤스 정의론. 황경식. 썸앤파커스. 2018.
혼자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늘 누군가의 위에 얹혀 있었다. 인생의 때마다 우연하게 만난 나와 너와 우리가 걷는 길은 나란히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얹히고 포개지면서 길이 된다. 내가 알지 못한 채로, 이미 여러 갈래의 뜻이 나를 지나가고 있었다. 뜻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흩어져 있는 것 같지만, 돌아보면 한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다. 나란히 줄을 맞추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에게 얹혀 있는 시간을 홀로 그리고 함께 산다. 보이지 않는 사이에 길이 이어지고, 그 길 위에서 자란다. 가족이 그렇고 공동체가 그렇고 사회와 국가와 인류가 그렇다.
담쟁이덩굴 같은 헤아릴 수 없는 연대와 협력 덕분에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살고 있다. 분명한 것은 홀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을 수 있을까... 감사의 이유가 있어서 감사한다면, 눈물이 마르지 않을 것 같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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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벗 되어 머물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랑과 감사의 표현으로 환해지는 하루 보내세요♡
대문사진. pixabay.
일부사진. by mocale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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