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짓는 문장 80.
살아 본 것만 나이테로 남는다
Only what is lived
leaves its rings behind
늘 그랬기에 질문하지 않았다.
당연한 것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진리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항상 그러했기에 결과가 똑같을 거라고 기대했다.
알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고 믿었다.
"씨를 뿌리면 나나요?"
새벽의 리더에게 받은 질문이다.
당연하다 못해 지극히 평범한 말이다. 하루 종일 그 말이 흘러가지 않는다.
씨가 뿌려지지 않은 밭은 아무것도 없다. 뿌려진 씨가 없으니 흙은 그대로다. 씨를 뿌린다는 건, 보이지 않는 것을 맡기는 일이다. 흙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결국 열매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함께 묻는 일이다.
그래서 농부는 매해 씨를 뿌린다. 한 번이라도 결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경험이 다음 해의 마음과 손발을 움직이게 한다. 만약 뿌린 뒤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면, 그 행위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씨를 뿌리면 나나요?
나지요. 싹이.
내 속에 돋는 답은 명확하고 짧다. 그러나 그 말은 여러 계절을 지나 체험을 한 사람과 한 번도 흙을 만져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르게 들린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알고는 있지만, 살아보지 않은 말이다. 너무 당연해서 흘리다가 새삼 새로워서 다시 주워 담았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 씨를 뿌리면 싹이 난다. 봄이 오면 생명이 돌고, 꽃이 피고, 계절이 지나는 동안 열매를 맺는다. 그것들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언제나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정말 그런가...
눈에 보이는 것은 결과뿐이다. 흙 위로 올라온 싹만을 보고 말한다. 당연히 난다고. 그러나 흙 아래에서는 알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겹쳐 있다. 부풀고, 갈라지고, 밀어 올리는 힘들이 이어져야 비로소 하나의 싹이 드러난다. 자연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먼저 움직인다. 본다는 것은 그 끝에 드러난 일부일 뿐이다. 그래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당연했던 적이 없다.
그저 반복해서 보아왔기 때문에 그렇게 믿게 되었을 뿐이다. 의례히 그런 것처럼 여겨왔던 거다.
별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도 그렇듯 당연하게 여긴다. 아침이 오고, 해가 뜨고, 저녁이 되고, 잠이 든다. 특별한 일이 없어서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오늘을 지난다. 하루가 무탈하게 이어지는 데에는 수없이 많은 조건과 과정이 겹쳐 있다. 인식하지 않고 알지 못하는 동안에도, 멈추지 않고 이어진다.
가뭄이 들고 나서야 물의 무게를 알고, 숨이 막히고 나서야 공기의 존재를 알아차린다. 늘 곁에 있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삶의 뼛속을 드나들어야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한 번이라도 흙에 손을 넣어 본 사람은 안다. 기다리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견디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간이 결국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너무 평범해서 밀어냈던 말들이, 다시 돌아와 단호하게 묻는다.
넌 정말 알고 있느냐고.
알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닌 것을 알고 있나, 나는.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고 있나, 나는.
모르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고, 모르는 것조차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나, 나는.
아는 것은 지나가고, 살아 본 것만 나이테로 남는다.
모든 감각을 열어 몸소 살아보아야 구체적으로 알고 깨닫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되어보고 싶다.
알고 있다는 것을 모두 내려놓고, 처음 옹알이를 하던 자리로.
봄이 오면 우리는 안다.
씨를 뿌리면 싹이 난다는 것을.
봄,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기적이다. (주)
주> 한 글자 사전. 김소연. 마음산책. 2018.
글벗 되어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특별한 즐거움이 있는 하루 보내세요♡
사진. pinterest.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