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냄새

삶을 짓는 문장 79.

by 모카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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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시간을 이어 사는 일이다

Life is the quiet act
of carrying time forward




아주 오랜만에 동네 목욕탕에 왔다.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안쪽에서 밀려 나온 공기가 콧속을 훑고 간다. 여섯 살 남짓한 꼬맹이가 엄마 손을 잡고 바닥을 조심스레 디딘다. "엄마, 여기 미끄러워?" 하며 코를 훔친다.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아이의 손을 더 단단히 잡고 안쪽으로 끌어당긴다. 아이는 한 번 더 숨을 들이마시고, 발끝에 힘을 준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다. 오래전 내 손을 잡고 있던 엄마의 분주함이 같이 따라온다.




새벽이면 골목이 먼저 데워졌다.

대문을 열지 않은 집들이 많은데도 따뜻한 기운이 길을 타고 내려온 듯했다. 까치발을 들고 선 창문 틈새로 코끝에 먼저 닿는 냄새가 있다. 데운 물과 비누 냄새가 섞여 눅눅하면서도 포근한 기운이다. 자라지 않은 어린 코가 익힌 냄새다.


토요일엔 엄마가 분주했다. 목욕 바구니 안에 수건을 접어 넣고 초록색 때수건과 다이알 비누를 챙겼다. 리도 샴푸, 빗, 자잘한 세면도구와 속옷들을 챙기다 보면 바구니가 가득 찬다. 난 그 옆에서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만지작거렸다.


"이제 가보자!"


말이 떨어지면 곧장 삼 남매는 엄마를 따라 할머니와 옆집 목욕탕으로 따라나섰다.


골목을 벗어나면 냄새가 점점 짙어졌다.

목욕탕 매표대에 들어서면 밖과 다른 공기가 묵직했다. 탕의 문을 열면 하얀 김이 낮게 깔려 있고 사람들의 몸이 가까이 붙어 있었다. 누가 누군지 잘 보이지 않아도 말소리와 물소리로 울리는 공간을 채웠다.


탕 주변에 자리를 잡고 물을 끼얹으면 본격적인 씻기가 시작됐다. 동생들과 탕의 물을 만지다가 괜히 손을 빼기도 하고, 다시 넣었다가 뜨거움에 놀라 움츠리기도 했다. 가끔 물이 코로 잘못 들어가면 기침이 나왔고, 콧속이 아파서 참으려다 더 크게 울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등을 몇 번 두드렸고, 그 손길은 물보다 더 뜨거웠다.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비슷한 동작을 했다. 등을 밀어주고, 머리를 감기고, 물을 끼얹었다.

앉았다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에 동생들과 자리를 옮겨 다니며 온탕, 냉탕에서 장난을 쳤다. 바닥은 늘 젖어 있었고 발을 디딜 때마다 미끄럽게 밀렸다. 물소리가 끊이지 않고, 웃음소리와 우는 소리가 섞였다.


목욕이 끝나고 문을 열면 공기가 가볍고 몸이 쾌청했다. 목욕탕의 불문율인 항아리 바나나 우유를 두 손으로 잡고 마시면 입안이 금세 차가워졌다. 조금 전까지의 뜨거운 시간이 말끔히 씻기는 느낌이 좋아서 아주 천천히 마셨다. 집으로 돌아와도 냄새는 그대로 따라왔다. 문을 닫아도 사라지지 않고 방 안에 남아 있었다. 옷에도 머리카락에도 스며 있었다. 엄마 옆에 앉으면 같은 냄새가 났고 할머니 옷에도 비슷한 냄새가 오래 남았다.

시간이 지나 그 집을 떠난 뒤에도 냄새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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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중년이 된 내 몸이 젖은 타일 위를 조심히 딛는다.

코끝을 맴도는 습한 냄새가 한 번에 올라온다. 뜨거운 탕의 물을 끼얹던 젊은 엄마의 얼굴이 겹쳐진다.

지금 맡는 냄새와 어린 날, 그때의 냄새가 구분되지 않는다. 공간은 그대로인데 몸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함께 딛고 서 있다. 시간은 감각을 따라 되돌오나보다. 그 기억이 몸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항아리 바나나맛 우유를 손에 들고 어린 내가 지금의 나와 같은 시간으로 포개져 있다.

기억은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냄새에 닿는 순간 감각으로 열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글벗 되어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따스한 봄날 보내시길 바래요♡


사진. pinterest.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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