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짓는 문장 77.
삶은 작은 것들로 따뜻해진다
Life is warmed by small things
인간의 행복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의해서만 가져오게 되는 것은 아니고 내면에 반짝이는 빛과도 깊게 연관이 있으므로 (주)
재채기를 참다가 눈물이 났다.
시원하게 재채기를 해도 눈물이 따라 나온다. 입춘도 지났고 정월대보름도 지났는데 내가 다니는 길에는 아직 꽃이 없다. 남쪽에는 벌써 유채꽃이 피고 매화도 피었다는데, 이 길의 나무들은 겨울 모습 그대로 서 있다. 가지 끝에 마른 빛이 매달려 있어 아직은 겨울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래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지 끝이 밝아지고, 겨울만은 아닌 색이 비친다.
나는 사계절 내내 비염을 달고 산다. 일상생활의 질이 떨어질 만큼은 아니지만 공기의 질이 나쁘면 코끝이 먼저 알아챈다. 재채기가 올라오는 순간도 대개 미리 안다. 코끝이 간질거리고 쉬던 숨도 멈춘다. 그 짧은 사이에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질끈 감는다. 재채기를 시원하게 하면 좋을 텐데 때로는 중간에서 멈춰 잔뜩 힘준 몸이 머쓱해지기도 한다. 그러다 몇 번 연달아 터지고 나면 어김없이 눈물이 난다. 대신 코끝은 잠깐 속이 다 비워진 것처럼 시원해진다.
봄이 되면 여기에 한 가지가 더해진다. 꽃가루 때문이다. 눈이 가렵다. 눈을 비비다 보면 목도 간질거린다.
꽃은 활짝 피어도 내 몸은 그 환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봄을 꽃보다 먼저 재채기로 맞이한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먼저 보이지 않는 것들이 기척을 보낸다. 꽃은 아직 보이지 않는데 꽃가루가 공기 속에 섞여 있다.
작년 늦가을, 사랑하는 벗에게서 작두콩을 선물로 받았다. 비염에 좋다며 한 뭉치를 보내왔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콩 모양이 낯설어 이리저리 관찰하며 한참 들여다보았다. 재채기를 하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트에 있는 작두콩 티백을 쓸어 보냈다. 내 코의 사정을 장바구니에 담아 보내 준 셈이다. 나의 연약한 부분을 마음에 두었다는 생각이 들어 오래 따스하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요즘 다시 우려 마신다. 재채기가 잦아지는 계절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물을 끓여 차를 우리면 뜨거운 김이 코끝에 닿는다. 고소한 맛이 은은하게 퍼지고 코와 목이 편안해진다. 재채기가 알아차렸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아까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더니 작두콩차 한 잔 앞에서 자리를 비웠다.
꽃가루도 그렇다. 보이지 않지만 코안을 간질이고 눈가를 적신다. 벗이 보낸 작두콩차도 그런 마음의 모양일 것이다. 재채기를 마음에 두었다가 장바구니에 담아 보내는 마음.
꽃이 피기 전에 꽃가루가 먼저 퍼지듯, 향이 퍼지기 전에 마음이 먼저 퍼진다.
코로 맡는 향보다 마음으로 전해지는 은은함이 더 깊고 짙다.
작두콩차를 보내온 벗의 마음이 차 한 잔에 녹아있다.
작두콩차를 한 모금 더 마신다.
코끝이 다시 간질거린다.
재채기를 몇 번 연달아하고는 눈가를 손등으로 문지른다.
창 너머 가지 마른 곳에 까치들이 오간다.
보이지 않는 봄을 연신 주워 나르는 모양이다.
주> 자기신뢰철학/영웅이란 무엇인가. 랄프왈도 에머슨. 동서문화사. 2020.
글벗 되어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주 마무리 시원케 하시는 금요일 보내시길 바래요♡
사진. by mocalem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