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길에서
벗은 눈바람 속 카페같은 존재다
A friend is a café you step into
during a snowstorm
내 친구들은 내가 구해서 온 것이 아니라 위대한 신이 나에게 보내준 존재들이다. 나는 오래된 권리와 덕의 신성한 애정에서 친구들을 찾는다. 아니, 내가 아니라 나와 친구들의 내면에 깃든 신이 개인의 성격, 관계, 나이, 성별, 환경의 두꺼운 벽을 아무것도 아닌 듯 부수어 많은 사람을 하나가 되게 한다. 내 삶에 깊이를 더해주고 생각의 의미를 넓혀주는 사람들의 따뜻한 애정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자기신뢰. 랄프왈도에머슨. 윌북. 2025.
눈바람이 갑자기 거칠어진다.
차 유리에 자잘한 싸라기 눈들이 거세게 몸을 밀어댄다.
본태뮤지엄과 방주교회.
차로 2분이면 닿는 거리인데, 마음은 긴 복도를 지나온 듯 하다.
같은 산길 위에 있는데도 두 공간의 감각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지은 본태뮤지엄은 단단한 침묵이 느껴진다.
침묵이 단지 소리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는 걸, 그곳의 공간들은 차분히 보여준다.
말이 많아질수록 내가 흐려지는 날이 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내가 또렷해지는 날이 있다.
많은 설명으로 가까워지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설명이 늘수록 멀어지는 관계도 있다.
방주교회는 건축가 이타미 준이 지은 건축물이다.
기도의 침묵, 머무름의 침묵. 비움의 침묵.
가끔은 어떤 말이 나오지 않은 채로 그 분 앞에 앉아 있을 때가 있다.
말로는 다 담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는 걸 그 공간은 고요히 허락한다.
점점 거세지는 눈바람을 피해 카페로 몸을 피한다.
따뜻한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그동안 만났던 벗들을 떠올려본다.
오름을 오르며 숨이 가빠질 때, 바닷길에서 바람이 얼굴을 때릴 때, 눈발이 휘몰아칠 때.
그럴수록 '함께'라는 말이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인생이 결국 혼자만의 여정이 아니더라도, 혼자만의 여정처럼 느껴지는 순간은 많다.
그럴 때 친구는 나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해결하려 들지 않음으로써 나를 살린다.
말이 아니라, 길을 내어주는 방식으로 기다려준다.
그래서 '벗'을 생각하면 결국 예수님께로 닿는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종이 아니라 친구로 부르셨다.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옆에서 옆으로,
그들은 늘 완벽하게 이해하고 완벽하게 합의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주 어긋났고, 자주 실패하고, 자주 겁을 냈다.
그 관계에는 성과를 따지는 계산도, 위계를 확인하는 언어도 없다.
함께 길을 걷고, 바람을 맞고, 말이 비워진 자리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신뢰가 있다.
말로 다 담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그분은 이미 알고 계셨다.
친구라는 호칭은 관계의 자격을 시험하는 말이 아니라, 관계를 살려내는 선언에 가깝다.
보, 부, 반, 배, 벗이라는 말을 새롭게 읽고, 새기게 된다.
보(補)는 부족한 것을 메워주는 마음이다.
상대의 결핍을 들춰내는 것이 아니라, 모자람 곁에 조용히 서 주는 일이다.
부(附)는 곁에서 친근하고 가깝게 지내는 것이다
한때 뜨겁다가 식어버리는 관심이 아니라, 평범한 날들을 함께 동행하는 성실함이다.
반(伴)은 함께 따르며 길을 같이 걷는 동행이다.
앞서거나 뒤서지 않고 같이 걷는 것이다.
배(陪)는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보태고 쌓아올리는 협력이다.
벗(友)은 그 모든 것을 품고도, 그것을 공로로 만들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흔들릴 때도, 잘 될때도, 지나치게 해석하지 않고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내 삶의 이야기를 뺏지 않고, 내가 내 이야기를 끝까지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나의 성장을 가로막지 않고 내 이야기를 살도록 하는 사람이다.
나를 함부로 재단하거나 단언하지 않는 사람이다.
벗은 내 삶에 깊이를 더해주고 생각의 의미를 넓혀 준다.
하지만 그 깊이는 멋진 조언에서 생기지 않는다.
대부분은 함께 말없이 지켜주는 시간에서 온다.
말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이, 기꺼이 '함께'의 온도를 유지해주는 사이,
그 사이를 지켜주는 벗들에게 오래도록 고마움을 느낀다.
어쩌면 벗이란, 눈바람이 거세질 때 내 마음과 몸을 피할 수 있는 카페 한 칸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차갑게 언 발과 손을 녹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무엇을 하든 자유롭게 머물 수 있는 공간.
너와 나와 우리 사이에 그 사랑과 신뢰가 있을 때, 관계는 더 이상 증명할 필요가 없다.
설명하지 않아도 오해받지 않고, 붙잡지 않아도 멀어지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으로 영글어진다.
나를 판단하지 않는 시선, 잘해내지 못하는 날에도 그대로 두는 용기, 서두르지 않고 머무르는 태도.
그런 벗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삶은 덜 외롭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진 못하지만, 서로의 인생을 다독여줄 수는 있다.
남편은 내게 그런 사람이다.
눈바람이 몰아칠 때 가장 안쪽에서 먼저 불을 켜 두는 벗이다.
모든 흠과 모자람을 고쳐야 할 목록이 아니라 '일부'로 함께 사는 친구이다.
직언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무한한 신뢰를 준다.
가장 가까운 벗이자 동행자이다.
그리고, 선물처럼 내 인생에 스며들어 온 모든 벗들이 각자의 거리에서 함께한다.
멀리, 가까이, 곁에.
그들이 내게 준 사랑 덕분에 나는 오늘도 조금 더 익어간다.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이사야 32:2)
글벗 되어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새로운 날, 새로운 나를 데리고 평온한 하루 보내세요^!^
사진. by mocalem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