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시술-배아 이식, 그리고 그 후
그날은 아기를 키우고 있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간 날이었다.
나보다 먼저 난임 시술을 했던 친구였다.
한참 이야기하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 친구는 아이와 소아과에 가야 한다며 나와 함께 집을 나섰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 핸드폰이 울렸고, 난임병원 번호가 찍혀 있었다.
며칠 전 배아 이식 후 임신 여부를 알기 위해 피검사를 했었다.
지금 울리는 전화 너머로 그 결과가 나를 찾고 있었다.
불안하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버스에서 내려 나는 울음을 터뜨렸고, 친구는 조용히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난포 채취 후 시험관에서 정자와 수정을 한 뒤 몇 개의 좋은 배아를 냉동했다.
채취 후 몸이 많이 안 좋아서 바로 배아 이식을 못 하고 1~2주 시간이 지난 뒤 몸 상태 보고 배아 이식을 하기로 했다.
배아 이식은 전에 시술했던 인공수정과 비슷했다.
동결 배아를 내 자궁에 이식하고 십여 일 간 착상을 기다렸다.
자궁에 이식하는 건 따로 마취를 하지 않았다. 조금 불편한 느낌만 들고 참을만하게 아팠다.
그 이후부터는 매일 '임신이 됐을까? 안 됐을까?' 사이에서 최대한 실망하지 않으려 마음에 폭신한 에어바운스를 설치했다. 혹시나 임신이 되지 않아 마음이 떨어져도 다치지 않게끔.
'제가 아이를 돌볼 준비가 되었을 때 아이를 보내주세요.'
매일 했던 기도였다.
정말 그랬다. 모든 기다림의 시간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고, 아이 역시 그랬다.
자연임신이 되지 않은 시간들이 내게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마냥 평온한 마음만은 아니었다.
임신이 되지 않았을 때 다시 시험관 시술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게 까마득했다.
다시 주사를 맞고 난임 휴가를 내고 피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며 조마조마하게 지내게 될 시간들이 막막했다.
심란한 마음으로 먼저 난임 시술을 했었던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항상 나에게 성숙한 위로를 건네던 친구라 만남의 시간이 기다려졌다.
친구는 인공수정으로 임신이 되어 예쁜 딸을 낳고 육아휴직 중이었다.
우리 집과는 조금 먼 곳이었지만 친구의 안부도 궁금했고, 아이를 위한 선물도 주고 싶었다.
친구 집 근처 백화점에서 아이에게 줄 선물로 인형을 사고 근처 베이커리에서 자그마한 케이크를 골랐다.
버스에서 내리자 친구가 아기띠를 매고 있었고, 아기띠 안에는 낯선 이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땡그랗게 바라보는 친구의 딸이 있었다.
집으로 날 안내하는 친구의 뒷모습이 조금 낯설었다.
우리는 대학원 동기였는데 그때는 둘 다 결혼도 안 한 20대 파릇파릇 청년이었다.
지금은 아기 엄마가 되어 능숙하게 아기띠를 휘릭 매고 아기를 얼르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친구는 택배를 뜯으며 아이와 잠시 놀아달라고 했다.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몰라 일단 입술에 웃음을 가득 머금으며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아이는 낯을 안 가리는지 나에게 서슴없이 아장아장 기어와 "누구지?" 하는 눈빛을 보냈다.
아무것도 묻어 있지 않은, 깨끗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
아이가 예뻐서, 정신없이 아이를 보는 친구의 모습이 안쓰러워서 순간순간 울컥했다.
떡볶이를 배달시켜서 먹었는데 아이의 이유식을 챙기느라 떡 한 가닥을 마음 놓고 못 먹더라.
친구는 엄마였다.
나도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나도 내 입에 한 술 떠 넣지 않고, 아이 입에 먼저 한 숟갈을 먹일까.
완벽할 수는 없지만 노력할 준비가 되었나.
...
아이를 아기띠에 둘러 매고 나와 함께 나온 친구는 버스 안에서 전화를 받는 나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난임병원에서 온 전화의 내용은 이랬다.
"피검사 결과 임신 초기 수치가 나왔습니다."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라 소음이 좀 있어서 내가 잘못 들었을까 봐 다시 한번 여쭤봤다.
"hCG 수치 000으로 임신되셨어요."
아득했다.
태양볕이 버스 창문을 때리고 있었고 창밖으로 보이는 푸릇한 나무 잎사귀 하나하나가 팔랑거리며 내 시야에 가득 찼다.
간호사 선생님이 감정을 싣지 않은 말투로 객관적인 수치와 안내사항을 또박또박 말씀해 주셔서 아득했던 정신을 붙잡을 수 있었다. 병원에 다시 방문해야 한다는 말에 지금 당장 가겠다고 했다.
버스에서 내렸다.
연신 전화기에 '감사하다'고 말하며 울먹이는 내 어깨를 친구가 토닥여 주었다.
전화를 끊고 친구에게 임신이 되었다고 말하면서도 사실 조금 믿어지지가 않았다.
친구와 헤어져 병원으로 가는 길이 난임병원에 가는 그 어떤 날보다 두근거렸다.
난임병원으로 가는 버스에서 너무 기쁜 나머지 내 옆에 앉아 있는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혹시.. 그거 아세요? 저...... 임산부예요! 꺄악!! 저 임신했어요!!!"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옆사람에게 말을 거는 대신 버스에 타는 모든 사람들을 쳐다보며 웃음을 지었다.
이다지도 가슴 벅찬 '시작'은 내 생애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