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시술-아기집
검은 화면에 지지직거리는 하얀 동그라미.
초음파로 본 아기집이었다.
임신을 했다지만 내 몸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고, 초음파를 보기 전까지 내가 정말 임신을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혹시 상상임신 뭐 그런 거 아니겠지. 피검사 결과가 다른 사람 것과 바뀐 건 아니겠지. 누군가의 실수로 피검사 결과가 잘못 나온 건 아니겠지'라며 괜스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시험관 여정을 함께 했던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 영상을 보여주시며 아기집을 알려 주셨다.
"이게 아기집이에요. 잘 자리 잡았네요. 이 흐릿한 동그라미는 난황이에요. 초기에 아기들이 영양분을 공급받는 도시락 같은 거예요."
도시락이라니! 표현이 이렇게 귀여울 수가.
아기 크기는 1mm 정도라고 하셨다. 1cm도 아니고... 1mm면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흰 종이에 점 하나 찍으면 그게 1mm 아닌가?
초음파를 보기 전까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뱃속에 갑자기 1mm의 존재감이 내 심장을 콕콕 찔렀다.
내 심장은 콩닥거리며 또 하나의 심장을 맞이하고 있었다.
임신 7주 정도에는 아기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쿠쿵. 쿠쿵. 쿠쿵. 쿠쿵.
우렁차게 뛰고 있었다.
'우리 아기 잘 크고 있구나. 나 여기 잘 자라고 있다고 엄마한테 신호를 보내고 있구나.'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아기의 신호인 양 느껴져 울컥했다.
병원에 다니며 임신이 실감 날수록 건강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원래 컵라면을 좋아했었는데 내 몸에 안 좋은 음식은 아기에게도 안 좋다고 생각해 잘 안 먹었다.
길을 걷다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으면 담배 연기가 따라오지 않을 것 같은 거리까지 숨을 참으며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다.
내 뱃속이 아기가 사는 세상 전부라고 생각하니 아기의 세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몸조심뿐만 아니라 마음도 조심하게 됐다.
원래도 조금 우울한 감정이 쉽게 드는 편이었는데, 임신 후에는 내 우울한 감정을 아기가 느끼게 하기 싫어 엄청난 긍정의 힘을 발휘했다. '어쩔 수 없지, 뭐', '괜찮아'를 입에 달고 살았다.
심지어 '그래서 어쩌라고'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나를 공격하는 수많은 사람들, 사실들, 사건들에 다소 반항적인 태도를 휘둘렀다.
나쁜 뉴스들은 눈 감고 귀를 막으며 최대한 밝은 세상만을 보려고 했다.
안다.
아이가 막상 태어나는 세상은 부정적인 것들 투성이라는 것을.
좋은 것만 줄 수 없고, 밀어닥치는 어려움을 잘 이겨내는 교육에 더 힘을 쏟을 것임을.
그렇지만 나와 아기가 한 몸인 임신 기간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주고 싶었다.
그럴 수 있었다.
나는 아기의 집이었으니까.
그날이 왔다.
나에게는 길게만 느껴지던 아이가 찾아오기를 바라던 날들.
덤덤하게 그 시기를 써내려 갔지만 그날그날 하루하루는 매우 길었던 시간들.
지금은 뱃속에 품었던 아기가 내 옆에서 입을 오물오물하며 자고 있다.
잠도 못 자고 외출은 물론, 씻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간절하게 바라던 우리의 가족, 우리의 사랑이 저렇게 평온한 얼굴로 자고 있는 지금.
아이가 없었다면 경험할 수 없는 경이로운 행복이 매일 나를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