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시술-정자 채취 그리고 ...
정자 채취를 마치고 나온 남편의 얼굴을 보니 약간은 심드렁하고 조금은 심란한 표정이었다.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보자 희미하게 웃어 보이며 잘하고 왔다고 했다.
민망하겠다 싶으면서 그 이상의 씁쓸함이 보여 가만히 등을 두드려 주었다.
"여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또 하기는 싫네요"
정자 채취의 어려움을 나지막이 이야기하는 남편이었다.
시험관 시술을 하며 누가 더 힘들다 대결하는 건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몸이 힘든 건 아내라는 점에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주사를 맞고, 난자를 채취하고, 이식하고, 피를 수차례 뽑고, 시간마다 약을 먹고, 혹시나 있을 부작용을 견디는 건 어쩔 수 없이 아내다.
그렇지만 남편도 힘들다.
남편은 시험관 시술 전부터 난임 검사를 하기 위해 정자 채취를 했었고, 시험관을 위해 한번 더 해야 했다. 남편을 놀리려고 한껏 들떠 있었는데 남편의 핏기 없는 얼굴을 보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거둬야 했다.
"어땠어요?"
내심 정자 채취 과정이 궁금했던지라 조심스럽게 물어봤지만 자세한 설명을 해 주지 않았다. 이거 아쉬운걸..
말하기를 꺼려하는 모습에 꼬치꼬치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남편은 왜 심각한 표정으로 나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비밀의 방 같은 곳에 들어가 정자를 스스로 뽑아내야 한다.
굉장히 공식적인 일이라 채취 과정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고, 민망함에 자꾸만 시선을 회피하게 되는 곤란함도 겪는다.
무엇보다 아내와 진정 어린 사랑의 행위가 아닌 오로지 정자만을 뽑아내기 위한 과정에서 '이게 맞나?', '내 아이를 이렇게 만드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인가?' 등의 복잡한 생각이 비죽비죽 떠오른다고 한다.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남편은 아내의 정신 건강을 지켜야 한다.
몸이 힘드니 마음도 힘들어지고, 시험관의 막연함 앞에서 때때로 무너지는 아내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몸에 시술을 할 수는 없다는 죄로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예민해지는 아내를 받아줘야 한다.
쉽지 않다. 무작정 다 받아주기에는 남편도 사람인지라 매번 웃는 얼굴로 아내를 받아줄 수는 없다.
될 수 있으면 병원에 같이 가라고 하지만 모든 병원 일정을 같이 할 수는 없다. 어떨 때는 주 2~3회 병원에 가야 할 때도 있기 때문에.
채취 후, 이식 후에는 절대 안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남편이 모든 집안일과 아내 돌보기를 맡게 된다.
아내가 미처 챙기지 못한 일들을 처리하고 병원에서 매 과정 과정마다 주의사항을 잘 듣고 와 아내의 몸 상태를 살핀다.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던 '정서적 지지'면도 신경 써가며 시험관 시술 과정을 아내와 함께 한다.
이렇듯 남편도 힘들다.
어려운 과정을 먼저 지나온 부부로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 남편이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몇 가지 남겨본다. 저마다 상황이 달라서 각자의 상황에 맞게 지혜로운 난임생활을 보내시기를 바란다.
일단, 최대한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간다.
매번 병원에 같이 갈 수는 없지만 병원에 같이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잔뜩 있다는 점을 아내에게 넌지시 비추는 것도 좋다.
가능하다면 출근 전 아내를 병원에 데려다주는 등 여러 방법으로 한두 번 정도의 무리를 해본다.
채취나 이식을 할 때는 반드시 같이 간다. 그때는 마냥 서럽다. 남편이 부축이라도 해주면 서러움을 토로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시술하고 나오는 아내를 꼬옥 안으며 과도하게 아내를 챙기는 행동은 훗날 아내에게 참 잘했어요 스티커를 받을 수 있는 아주 좋은 태도다.
함께 병원에 가는 날은 난임병원 진료가 아니라 난임병원 데이트로 바꾼다.
아내가 좋아하는 메뉴로 병원 근처 맛집을 찾아본다. 우리 부부도 평소 같으면 갈 일 없는 병원 근처 맛집을 찾아보며 데이트를 즐겼다.
유난히 병원에서 맞은 주사가 아픈 어느 날은 근처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에도 가보고, 경치가 좋은 카페에서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며 "아우.. 오늘 너무 아팠어."라는 가벼운 투정으로 아픔을 흘려보내기도 했다.
어쨌든 모두 나쁘지만은 않은 추억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아이를 꼭 낳고 싶다는 부담감을 주지 않는다.
아내나 남편 모두 시험관 시술까지 하는 거라면 아이가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지 않겠나.
아내는 특히나 시술 과정에서 몸이 힘들기 때문에 다시 하고 싶지 않아서라도 아이가 생기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몸에 안 좋은 음식이나 생활 습관에 대해 흠칫하게 되고, 심지어 '핸드폰 많이 해서 전자파 때문에 아이가 안 생기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으로 괜스레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으려고도 한다.(제 얘기)
그런 아내에게 아이가 꼭 생기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며 부담감을 덜어 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다독여 준다. '나도 물론 아이가 생기기를 바라고 있지. 하지만 아이보다 당신이 먼저야.'라는 태도면 좋을 듯하다.
결국 아이를 기다리는 건 아내나 남편이나 같은 마음이기 때문에 이번에 과연 아이가 찾아왔을까? 하는 물음은 남편도 똑같이 한다. 똑같이 막막하고 답답하다.
아내 못지않게 남편도 온갖 신경을 곤두서가며 아빠가 될 준비를 한다.
부부 두 사람 모두에게 두 사람만 있던 일상에 어떤 일들을 더 해야 하는 시간을 살아간다.
아이를 만나러 함께 가는 길이니 손 꼭 잡고 보듬으며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