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이런 아픔 처음이야

시험관시술-난포 채취하는 날

by 김삐끗

어렸을 때 철없이 품었던 소망은 병원에 입원해 보기였다.

드라마 주인공이 병원에 입원하면 수척해도 예쁜 모습으로 침대에 청초하게 누워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은 양손 가득 맛있는 선물들을 사 온다. 그 장면이 주는 평화로움, 아픈 사람을 향한 사람들의 챙김이 아주 부러웠다.


그런 소망이 무색하게 난 잘 아프지 않은 건장한 여자로 씩씩하게 자랐고, 아픔 또한 잘 참아서 어렸을 적 이가 흔들리면 병원에 가지 않고 스스로 이를 뽑았다. 부모님은 그럴 때마다 용감하다고 칭찬을 해주셨는데, 그 칭찬을 듣는 게 기분 좋아 사랑니를 제외하고 다른 이들은 내 선에서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치과든 내과든 어딘가 가볍게 아파 병원에 갈 때도 초등학생 때부터는 혼자 다녔다. 의사 선생님은 초등학생 꼬맹이가 겁내지도 않고 혼자서 병원에 씩씩하게 다니니 갈 때마다 훌륭하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그런 칭찬들이 아픔을 잘 참는 용감한 어른으로 자라게 했다.


그랬던 나인데.

시험관 시술의 아픔은 좀 당황스러웠다.

스스로 배에 주사를 놓는 건 처음에만 두렵고 무서울 뿐, 익숙해지면 나름 간호사님처럼 능숙한 동작으로 무사히 바늘을 찔러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게 시술의 과정 중 가장 큰 아픔일 거라고 크게 착각했었다.


시험관 시술은 주사를 맞으며 난포를 여러 개 자라게 한 다음 난포를 채취해서 시술을 진행한다. 난포 채취 날 처음 하는 시술에 살짝 긴장 됐지만, 채취 후 남편과 맛있는 거 먹을 생각에 들뜬 마음이 더 컸다. 틈날 때마다 채취 후기를 찾아보고 채취 방식을 미리 시뮬레이션하며 긴장을 줄였다. 여태껏 강한 여자로 자라왔으니 그에 기대 '난 아픔을 모르는 여자지'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병원으로 향했다.


남편이 먼저 정자를 뽑으러 가고, 혼자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 있었다. 곧 간호사님이 들어오셔서 주사를 놓는다고 하셨다. 손등에 꽂히는 주사의 뻐근한 아픔이 느껴지자 애써 외면했던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항생제 테스트를 한다며 왼쪽 팔에 주사를 또 놓으셨는데, 이게 아프기로 악명이 높다는 걸 수많은 채취 후기를 통해 읽었던 터라 눈을 질끈 감았다. 약물이 팔에 들어오며 화끈한 아픔이 느껴졌지만 2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어서 아픔을 모르는 여자인 나는 '훗 이것쯤이야'라며 허세를 떨었다.


머리에 수술캡을 쓰고, 손등에 주사 바늘을 꽂고 있는 나의 모습이 신기해서 동영상을 촬영했다. '주사를 꽂고 있는 나의 모습 너무 신선해! 수술캡도 처음 써봐~! 짜릿해!' 이때 내 표정을 사진으로 찍었다면 묘하게 흥분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려는 입술꼬리가 단박에 느껴지는 모습일 거였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편으로부터 안쓰러움을 자아내려는 의도로, 더불어 '여보, 저한테 잘하세요'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내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남편에게 보냈다. 나 잘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듯 여유 있는 미소도 한번 날려주고.


수술실로 걸어서 들어갔고, 진짜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깼더니 다시 원래 대기하던 침대로 돌아와 있었다. 수술실에서 이곳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그때 갑자기 생리통의 10배 정도 되는 고통이 몰려왔다. 이건.. 후기에서 본 적이 없는데. 대부분 괜찮다고 그랬다.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후기들만 선택적으로 기억에 저장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내가 힘들어 하자 간호사님이 진통제를 놓아주셨고, 다른 분들보다 한참을 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누군가가 칼로 내 자궁을 긁는 듯한 통증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간호사님이 힘드시면 좀 더 누워있다 가셔도 된다고 했다. 아픔을 이겨내는 용감함으로 커온 나로서는 살짝 자존심이 상해 괜히 괜찮은 척하다가 이내 진통제 조금만 더 맞게 해달라고 하며 쓸데없는 자존심을 굽혔다.


조금 더 통증이 나아졌고, 의사 선생님의 진료를 보았는데 난자 22개가 채취되었다고 하셨다.

꽤 많이 채취된 거여서 좀 더 다른 분들보다 힘들 수 있다고 하셨다. 일단 많이 채취된 건 그만큼 많이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결과니 마음이 놓였다. 채취 전 가장 많이 찾아본 게 채취 후기가 아닌 병원 주변 맛집이었는데 맛집은커녕 물도 먹기가 힘들었다.


집에 도착한 뒤 진정한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배가 불편하고 복수가 차서 똑바로 누울 수가 없었다. 2~3일은 숨을 몰아쉬며 소파에 앉아서 잤다. 음식은 먹기만 해도 구역질이 올라왔다. 첫날은 계속 속을 게워내고 진이 빠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두 번째 날도 계속해서 구역감이 있었고, 결국 병원에 가서 수액과 항구토제를 처방받아 3시간 정도 맞고 왔다. 구토감이 힘들어 그 주에 두 번이나 수액과 항구토제를 병원에서 맞아야만 했다. 난포 채취 후에는 복수가 차니 이온음료를 하루에 2리터씩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뭘 먹기만 해도 토를 하니 이온음료를 마시는 게 곤욕이었다.

게다가 변비가 찾아왔다. 안 그래도 배가 빵빵한데 안에 있는 변은 나오질 않으니 배가 너무 아팠다.


이틀, 삼일 째 저녁. 나아지지 않는 몸 상태에 병원에 급하게 전화를 했고, 내 증상에 맞는 처방을 해주신 뒤 너무 힘들면 근처 병원 응급실로 가라는 답변을 받았다. 일주일 간은 바나나 한 개를 다 못 먹을 정도로 속이 안 좋았다. 먹성 좋은 내가 바나나 한 개를 다 못 먹는 건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너무 힘이 들어 계속 눈물이 났고, '괜히 시험관 해서...'라는 후회의 칼이 강력하게 준비한 긍정이라는 방패를 를 날카롭게 베어버렸다. 평소 '할까 말까 할 때는 하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웬만한 건 일단 해보고 후회를 하지 않는 편인데 시험관은 후회가 되었다. 이때는 꽤나 감정적이어서 후회라는 쓸데없는 단어가 어른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모든 엄마들이 존경스러웠다.

난자채취도 이렇게 아픈데 임신과 출산은 얼마나 아플까. 힘들까.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해 약하디 약한 마음이 온통 나를 지배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조금씩 몸이 괜찮아졌고, 비교적 많이 채취된 난자의 숫자를 보며 고통을 밀어내 버렸다.


지금에 와서는 '결국 다 지나간다'는 뻔하지만 진리의 말이 입술에 맴돈다. 이 시기를 거치며 나는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울지 않으면 선물을 준다는 노래처럼 슬픔을 견디면 선물처럼 나에게 무엇인가 주어지겠지. 그게 아이가 아니더라도 감사하기를 바랐다.

생각해 보면 이미 선물은 받았다. 남편과 나는 이 아픈 시간을 함께 지나가면서 끈끈해졌다. 처음 느낀 아픔과 힘든 나날이었지만 남편이 날 얼마나 걱정하고 사랑하는지 느낀 시간이므로 이미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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