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해킹도 아니고,
기술 과시도 아니었다.
이번 사안은 의도된 시스템 붕괴,
즉, 구조 그 자체를 노린 작전이었다.
며칠 전, 미국 측은 극히 이례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공유해왔다.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문서와 구술 보고의 형태로.
정보량, 범위, 그리고 공유의 속도.
모든 것이 '예외적'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중국의 양자 컴퓨터 개발 정보였다.
중국은 몇 년 전부터 고성능 AI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우회적인 방법을 써 왔다.
보따리상, 해외 협력국, 중간 상인을 통해
GPU와 서버, 데이터 저장 장비를 고가에 구입했다.
정가의 3배에서 10배.
하지만 중국 정부가 직접 자금을 대는 구조라
속도는 느려도 멈추지 않았다.
미국은 이 과정을 수년간 감시해왔다.
하지만 그들이 알아차린 건,
중국이 언젠가 이 흐름의 끝에서 '다른 길'을 택할 것이란 예감이었다.
그 다른 길—
양자 컴퓨팅.
하페이(合肥).
중국 안후이성에 있는,
과거엔 그저 중국과학기술대학의 본거지였던 도시.
지금은 양자 기술의 수도로 변모 중이다.
‘국가양자정보과학연구소.’
미국 정보기관이 파악한 바로는
하페이 지역에 **중국과학원, 과기대, 군사기관 산하 연구소까지 포함해
모든 양자 역량을 집중한 ‘전략 복합 단지’**가 형성되고 있다고 했다.
수십 조 원의 예산,
선택과 집중,
그리고—목표는 하나.
비트코인.
정확히는,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화폐를 붕괴시키는 특수 목적 양자 컴퓨터.
블록체인의 구조는,
탈중앙화된 신뢰 기반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그 신뢰는 결국
해시값과 서명, 비밀키라는 ‘암호 알고리즘’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 알고리즘은,
양자 컴퓨터 앞에선 허술하다.
미국은 이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 공격이 시도됐을 가능성은 처음이라고 했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금융 질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가장 약한 고리를 찾은 겁니다.”
미국 측 요원이 그렇게 말했다.
“기존 금융 시스템은 달러를 중심으로 통제됩니다.
그러나 가상화폐는
통제되지 않는 자산이며,
동시에 달러의 신뢰를 위협할 수 있는 구조죠.”
미국은 최근,
중국이 이 양자 시스템을 실전 테스트하려 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블록체인 기반 자산의 실시간 해시 연산 패턴에서 이상값이 감지됐고,
중국 요원들이 주요 국가로 파견된 사실도 동시에 확인됐다고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미국은 이 정보를
한국 측에 먼저 제공했다.
그들은 말했다.
“한국에도 관련 조직이 잠입해 있죠.
귀국의 정보사 요원이 추적하던 바로 그 조직,
우린 그것이 ‘중국의 암호화폐 교란 조직과 연결된 분파’임을 확인했습니다.”
나는 침묵했다.
이런 수준의 정보 공유는
보통 동맹국 간에도 이뤄지지 않는다.
미국은 왜—
왜 이 정도까지 협조하는가?
그들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내겐 명확했다.
“백준기.”
그가 없다면
이 사안을 해결할 수도,
저지할 수도 없다고
그들은 판단한 것이다.
어쩌면—
그가 의도된 통로였다는 내 감각이
정확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존재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무언가 **‘설계된 교점’**일 수 있다는 가정.
그 가정이, 점점 확신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백준기에게
이 정보의 일부를 공유했다.
그는 예상 외로,
조용히, 진지하게 들었다.
그리고 단 한 문장으로 말했다.
“이제는—
내가 뭘 모르는지를 먼저 알아야겠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A를 넘었고,
그다음은—
‘누가 이 망을 설계했는가’를 추적하는 일이다.
21. 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