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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큐비트 프로토콜] 23. 이중 스파이

by 백기락


대화는 조심스러우면서도 깊어지고 있었다.
백준기의 질문은 날카롭고 구체적이었고,
나는 가능한 범위 안에서 그에게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벨이 울렸다.

순간, 공기 밀도가 달라졌다.
이곳은 안가다.
주소를 아는 사람도, 문을 두드릴 사람도 없다.
배달도 시키지 않는다.
예정된 누구도 없다.

나는 침묵 속에서
장전된 글록을 조용히 꺼냈다.

“안방으로 들어가세요.”
나는 낮게 말했다.
백준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방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벽면 모니터에 연결된 비밀 카메라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

저우호준.
NK은행의 협력사 직원으로 위장하고,
2년 넘게 내가 감시해온 중국계 요원 중 한 명.
정보에 따르면, 그는 중국과 직접 연결된 인물이었고,
작전 중 단 한 번도 빈틈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지금,
두 손을 들고, 이곳 안가 앞에 서 있었다.

무장도 없었다.
표정은 침착했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재차 주변을 확인했다.
카메라로 골목길과 상하층, 인접 건물 출입구를 확인했고,
그는 혼자였다.

문을 열었다.
총은 그대로 겨눈 상태였다.

“천천히. 손은 그대로.”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입을 열었다.

“걱정 마십시오.
저는 당신들을 도우러 왔습니다.
협조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사안은—한 나라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놀라운 건,
그의 한국어 발음이었다.
완벽에 가까웠다.
그건, 학습이 아니라 체화된 언어 감각이었다.

나는 총을 내리지 않은 채 물었다.

“정체를 밝혀.”

그는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일본 내각정보조사실,
당신들 기준으로는 외교 경로를 통하지 않는 비인가 요원입니다.
중국에 파견되어 있었습니다.
이중 스파이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섰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조용히 설명했다.

“중국은 지금,
양자 컴퓨터를 중심으로 AI-슈퍼컴퓨터-암호화폐 탈취를 연결한
복합 사이버 전략을 실행 중입니다.
그걸 저는 내부에서 확인했습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건—
단순한 경제 전쟁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 전체에 대한 위협입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우리한테 오는 거지?
일본은 이런 정보를 절대 쉽게 넘기지 않는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백준기에게 시선을 맞췄다.

그 때문입니다.

“……나?”

백준기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저우호준—이제는 그가 아닌 다른 이름을 쓰는 남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당신을 오래 전부터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당신의 계좌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이 사안의 중심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백준기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응시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수많은 조각들이 조용히 재배열되기 시작했다.


이제 이 판은 삼자 게임이 아니다.
중국, 미국, 일본.
그리고 그 사이의 한국.

그리고 그 모든 교차점에
‘백준기’가 서 있었다.

나는 직감했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건
정보전도, 기술전도 아닌—

의도를 간파하고,
의도를 역이용하는 싸움이다.


[소설: 큐비트 프로토콜]

23. 삼각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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