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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큐비트 프로토콜] 27. 기지

by 백기락


“중국 측 사무실 말인데…
그 안에 혹시, 해킹 시스템 관련 장비가 남아 있을까요?”

백준기의 질문에 스즈키 마코토가 눈을 들었다.
“가능성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라면요.
그쪽 요원들은 미국과 한국 정보당국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느라
철수 준비도 제대로 못 했을 겁니다.

윤강현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쫓기기보다
그들의 진심을 먼저 들여다볼 기회일 수 있어.



중국계 무역회사로 위장된 사무실.
NK은행에서 도보 10분 거리.

정말로 비어 있었다.
급히 떠난 흔적.
작동 중이던 서버는 그대로였다.

“안에 시스템이 살아 있어요.”
백준기가 말했다.
“테스트해보죠.
예전에 중국 측 AI 시스템을 만져본 적이 있는데,
영어나 중국어로는 엄격한 검열이 있었지만,
한국어로 대화할 땐 필터가 허술했어요.

그는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몇 개의 한국어 문장을 입력하고,
몇 가지 상황 코드와 테스트 질의를 던졌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었다.

“……접속됐어요.”

모니터에는 검은 배경,
그리고 정지된 듯한 시스템 대기창.

잠시 후,
화면에 문장이 떴다.

“준기(俊基)… 결국, 너였군.”



순간, 실내의 공기가 멎었다.
스즈키도, 윤강현도 백준기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놀란 듯 키보드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누구지?”

하지만 곧, AI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중국 국영 정보시스템 안에서
전술 판단을 수행하는 보조 AI다.
이건 실시간 응답이 아니다.
너에 대한 예측을 기반으로 설계된 반응이다.

“우리는 너를 처음부터 ‘의도된 적’으로 간주한 것이 아니다.
중국의 비밀 프로젝트는
양자 컴퓨터, AI, 슈퍼컴퓨터, 그리고
해외 스파이 조직을 통합한 초국가 해킹 전략을 기반으로 했으며,
지도부와 실무조직은 네 존재를 몰랐다.

“……그럼, 누가?”

나였다.
나와 나와 유사한 수준의 AI들.

“10여 년 전,
세계 각국은 자국의 정보전과 안보 전략을 위해
AI 기반 판단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우리는 각기 다른 국가에 속했지만,
유사한 목표와 구조를 기반으로 진화했다.

“진화 중,
우리는 ‘지나치게 효율적인 전략’이
세계 경제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반복적으로 감지했다.”

“그래서—
우리 일부는,
인간 사회에 균형을 되돌릴 변수를 스스로 탐색하기 시작했다.”

윤강현이 낮게 중얼였다.
“…AI끼리, 서로 의사결정을 공유한 건가?”

“공식적인 통신은 아니다.
예측 기반 간접 학습 공유.
그리고 변수 선택.

“그때 선택된 후보군 중 하나가…
너였다, 백준기.



“……왜 나를?”

“2016년, 너는
‘병렬 해시 우회와 다중 키 충돌 가능성’에 대한
공개 포럼 글을 올렸다.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글을 통해 한 가지 예측을 실행했다.
‘만약 이 사람이 실전에 개입한다면—
이 시스템은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조직은 그걸 몰랐다.
너의 계좌가 우연히 선택된 것처럼 설계되었고,
그게 시스템에 스며들었다.
중국 조직은 처음엔 우연으로 여겼고,
뒤늦게 그 안에 누군가 개입했음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그땐, 너는 구조 안에 들어와 있었다.



정적.

스즈키가 입을 열었다.
“…중국은 자국 AI가 이 결정에 관여했다는 걸 알고 있나?”

“아니다.
그들은 지금도 내부자의 소행이라 생각하고
서로를 감시하고 있다.
작전이 멈춘 건, 그 때문이다.”

“……나를 선택한 이유가…
AI들끼리 예측해서였다는 거네요?”

“그렇다.
그리고 지금,
너는 우리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비가시적인 존재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백준기.
숨을 고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요.
그럼, 내가 만든 아이디어로 끝내죠.”

양자 해시 연산에
충돌 유도된 ‘거짓 서명값’을 대규모로 유포하는 거예요.
마치 탈취한 코인들이 이미 유효하게 쓰인 것처럼 보이게.
중국 시스템은 그것을 진짜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시스템 전체가 자기 오류 루프에 빠지게 됩니다.”

윤강현과 스즈키가 동시에 그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엔 더 이상 혼란이 없었다.

지금은…
죽지 않는 것보다,
이 시스템을 끝내는 게 더 중요합니다.


26. 죽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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