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비닐장갑

코로나가 만든 일상의 변화, 손빨래

by 황규호

“오빠, 오빠는 왜 이렇게 손이 작고 귀여워?”


아내는 찰랑거리는 긴 머리카락을 가느다란 손가락 틈새로 빗어 넘기며 물었다. 그리고는 연신 큰 소리로 웃곤 했다. 결혼 전, 연애시절에 그랬다는 말이다.




아내는 참 힘이 세다. 내가 캔맥주 뚜껑 따개를 따려고 쩔쩔매는 동안 그녀는 이미 유유자적 시원한 캔맥주를 들이켜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명색이 나도 사나이 남자인데 체면이 말이 아니다. 예전에는 아내가 그렇게 힘이 센 줄 미처 몰랐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갓 구운 카스텔라처럼 부드럽고 포실포실했던 예쁜 손은 흐르는 세월과 함께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 자취를 감춰버렸다. 이젠 기억의 저편에서 실낱 같은 느낌만으로 남아있다.




결혼 전 아내는 유난히 손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취미로 피아노를 쳤기 때문에 사람들의 손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평소에도 사람들의 손을 유심히 보는 편이었다. 손의 상태가 이상하거나 다친 사람을 보면 자신의 일인 양 안타까워했다. 나의 손은 두텁고 조그마해서 귀여운데 반해 아내의 손은 크고 가늘고 길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때부터 나는 작고 귀여운 손 때문에 여자 손 같다고 놀림을 많이 당했다. 그래서인지 적당히 크고 길쭉한 아내의 손이 무척 예쁘고 부러웠다.




연애하던 시절에 아내는 간혹 나의 손목을 잡아 이끌어 자신의 손목 끝단에 맞대고 천천히 손바닥을 서로 포개서 둘의 손가락 길이를 재 보곤 했다. 그럴 때면 손바닥을 통해 전해오는 따스한 온기가 나를 무장해제시키곤 했다. 아내는 반달 모양의 눈꼬리를 만들며 싱긋 웃다가 자신의 손이 더 길다며 목젖이 다 보이도록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웃으며 나를 놀려 대곤 했다. 쌍꺼풀이 진 크고 동그란 눈에 웃음기 가득 담은 채 서로의 손가락 길이를 재는 그런 모습이 마냥 예뻐 보였다. 그 손바닥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나는 마냥 좋았다.




코로나가 우리 일상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아내는 코로나 팬더믹이 시작된 이후로 거의 매일 저녁마다 빨래를 한다. 서로 직장을 다니니 별도리가 없다. 잠시만 방심해도 우리 식구 4명이 벗어 놓은 옷가지들이 세탁 바구니에 금세 탑처럼 쌓이니 아내 입장에선 어쩔 수 없이 거의 매일 저녁에 조금씩 소분해서 세탁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세탁기로 하는 빨래가 아니라는 것에 있다. 말 그대로 손빨래다. 세탁기를 사용하라고 가족들이 강권해도 기어코 손빨래를 고수한다. 요새 세상에 웬 고집인지 사서 고생이다.


그래서 아내의 손이 항상 까칠까칠하고 거칠다. 아내의 손이 까칠해질수록 내 마음도 같이 거칠어진다. 아내의 손은 시골 농부의 손처럼 투박하고 갈라져 있다. 욕실에 들어가 한참 동안 빨래와 씨름을 끝내고 문을 열고 나타날 때면 아내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다. 찜질방 습식 사우나에서 막 나온 아낙네처럼. 게다가 밭에서 김매다 나온 사람처럼 허리에 손을 얹은 채 구부정하게 걸어 나온다. 어김없이 허리가 아픈 모양새다. 내 마음이 편치 않다.




“미안해요. 시끄러워도 참아 줘요.”


아내가 저녁 잠자리에 들 때면 항상 나에게 건네는 말이다. 손빨래가 많아지다 보니 아내는 밤에 잘 때마다 핸드로션을 손에 듬뿍 바른다. 그리고는 그 위에 조리용 투명 비닐장갑을 끼고 잔다. 그래서 취침 중에 비닐장갑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계속 나게 된다. 아내는 그 소리가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비닐장갑에서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어렸을 때 많이 듣던 어떤 소리와 비슷하다. 우리 집은 작은 시골에 하나밖에 없는 제법 큰 가게를 했다. 도시에서 이것저것 다 사다가 진열해놓고 팔았다. 그런데 예전에는 집에 쥐들이 참 많았다. 나라에서는 전국적으로 동시에 쥐 잡는 날을 정하기도 하던 시대였다. 그런 날이면 마을에는 쥐약을 먹고 갑자기 변을 당하는 가축들도 나왔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저녁시간은 쥐들의 명랑 운동회가 펼쳐지는 시간이었다. 쥐들은 이리저리 사방을 날뛰며 온갖 비닐이나 종이를 갉아먹고 돌아다녔다. 그래서 방 천장이나 다락에서는 항상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린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누워 그 소리를 따라다니느라 한참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아내의 손에 끼워진 비닐장갑에서 나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어렸을 때의 그 기억을 소환하곤 한다. 나는 꼼짝없이 누워 아내가 잠들기를 기다린다. 괜스레 미안해지니 자는 척 숨소리도 죽이고 조용히 누워있게 된다. 잠시 후 비닐장갑의 부스럭 소리가 잠잠해지고 아내의 코 고는 소리가 나면 필시 피곤한 아내가 곤히 잠에 빠진 것이다. 그제야 불편했던 나의 귀는 한결 편해지지만 미안함에 몸을 뒤척이며 잠을 청하는 짠 해진 나의 마음은 여전히 오랫동안 멍멍하다.